커피가 식어간다

12일 오후 1시쯤 서울 중구 무교동의 한 골목. 점심을 먹은 직장인 둘 중 한 사람 손에는 일회용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커피 전문점 점주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200m 정도 이어지는 골목길에만 20여개의 커피 전문점 간판이 눈에 띄었다.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사장 김모(50)씨는 "20여개가 아니라 이 골목에만 40개의 커피집이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 10여곳에서 1000원짜리 원두커피를 파는 데다 생과일주스집과 호프집 등에서도 커피를 팔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1년 전만 해도 평일 점심때면 70잔 이상을 팔았는데, 요즘엔 30잔 팔기도 어렵다"고 했다.

◇원가 경쟁에 수익성 악화

최고 인기 창업 아이템이 '치킨'에서 '커피'로 바뀌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에 영업 중인 커피 전문점은 8만8500여곳으로 치킨집(5만9000개)보다 약 3만개가 많다. 메뉴에 커피가 있는 각종 디저트 전문점 등을 합하면 전국 커피 판매점 수는 10만개를 훌쩍 넘는다. 매장 수 증가 속도도 커피가 치킨을 압도한다. 커피 전문점 수는 공단이 조사하기 시작한 지 2년3개월 만에 6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치킨 판매점은 35% 늘었다.

커피 판매점이 '난립'하면서 개별 점포의 수익은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 지난 2014년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상가에 2000원대 저가 커피 전문점을 연 신모(51)씨는 요즘 폐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신씨가 새로 입주한 아파트 단지 앞에 커피집을 열었을 때만 해도 연간 5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지만, 2년 사이 인근에 7개의 커피 전문점이 새로 문을 열면서 최근엔 매달 적자를 보고 있다.

커피 판매점이 급격히 늘면서 최근엔 '가격 낮추기 경쟁'까지 치열하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커피 전문점은 4000~6000원대 고가 프랜차이즈 매장이 많았지만, 요즘은 중저가 커피 브랜드가 쏟아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점을 운영하는 정모(44)씨는 "2000원대 커피 전문점이 잇따라 등장하더니 지난해부터는 전국에 3만여개 매장을 갖고 편의점들이 1000원짜리 원두커피를 팔고 있다"면서 "최근엔 900원짜리 커피를 파는 테이크아웃 전문점까지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커피 전문점끼리 '출혈 경쟁'이 극심하다"고 지적했다. 커피 전문점 경쟁이 심해지면서 한때 토종 커피 브랜드 1위였던 카페베네는 창업 9년 만인 지난해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우후죽순 생겨 업계선 '공멸' 우려

커피업계에선 "이러다 공멸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기업에 다니던 한모(42)씨는 2011년 사직하고 서울 강남역 인근에 50㎡(약 15평) 규모의 커피 전문점을 열었다. 매장 인테리어와 권리금 등 초기 창업 비용으로 약 2억원이 들었다. 그러나 5년 만인 지난해 초 문을 닫았다. 개업 초기 반경 100m 내 커피 전문점은 7개에 불과했으나 폐업 직전엔 20개로 늘며 손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한 프랜차이즈 커피 업체 관계자는 "1~2년 안에 점포 증가율은 정체되고, 폐업률이 치솟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재환 중앙대 교수(벤처창업학회장)는 "다른 커피집과 차별되는 특별한 메뉴를 내놓는 등 충분한 준비가 됐다고 판단되지 않는다면 개업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