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의문의 살인·검은 배후·복수… 이쯤 되면 '공식'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 청문회에 불려나온 대기업 총수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최근 몇 달은 권력과 사회 정의, 그리고 이를 다루는 법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현실을 반영하듯 TV에서도 법률과 법조인을 다루는 드라마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은 전작 '피고인'이 끝나자 연이어 등장한 법정 드라마다. '피고인'에선 지성이 누명을 쓰고 살인자로 몰렸다가 사이코패스 재벌 2세에게 맞서 복수에 나서는 검사를 연기했고, '귓속말'에선 지성의 실제 아내인 이보영이 아버지 누명을 벗기기 위해 대형 로펌을 상대로 분투하는 전직 형사 역을 맡았다. 기대를 걸었던 담당 판사(이상윤)마저 비리 로펌 대표의 사위가 되지만, 결국 두 사람이 서로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면서 진실을 찾아가는 줄거리다.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매번 나온다.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던 아이들은 아직도 하늘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다리고 있겠죠"라는 대사는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 로펌이 추진하는 청룡전자 매각에 국민연금이 반대한다는 설정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김영란법, 대통령 주치의처럼 한동안 떠들썩했던 소재들은 물론 미세먼지까지 언급된다.

드라마 한 편에 이 사회의 모든 부조리를 담겠다는 것일까. 아쉽게도 현실 고발이라는 주제의식을 풀어나가는 정교함은 부족하다. 여러 이슈를 망라하려다 보니 이야기 구성력이 헐거워지고, 선악의 이분법적 구분 역시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10년간 양심적 판결을 해온 스타 판사가 비리 인사들로 구성된 법관 인사위원회 압력에 굴복해 정략결혼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납득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목숨 건 모험을 해서 어렵사리 얻어낸 결정적 증거를 번번이 통째로 불태워 버린다. "디지털 시대에 서류를 사진으로 찍어두거나 USB 사본을 남겨둘 생각은 아예 하지 않으니 불가사의하다."(최수현 기자) "황당할 만큼 비논리적인 스토리가 전개된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법과 정의만 들이대면 흥행이 된다고 생각한 걸까."(김윤덕 기자)

불의에 맞서는 주인공들이 불법적 수단에 기댄다는 모순도 있다. 이보영은 만취한 이상윤과 동침하는 장면을 몰래 동영상으로 찍고 이를 무기로 협박한다. 이상윤은 흥신소를 동원해 이보영 집을 몰래 뒤져 영상을 찾아내려 한다. "권력자들의 불법은 크고 나쁜 불법이고 주인공들의 불법은 사소하고 착한 불법인지 혼란스럽다."(채민기 기자)

조마조마한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드라마는 60분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달콤한 로맨스나 코믹 요소를 집어넣어 강약을 조절하는 다른 드라마와 다른 점이다. "악은 성실하다" "이익을 얻는 자가 범인이다" 같은 명대사도 나온다. 덕분에 시청률은 3회(13.8%)부터 동 시간대 1위로 올라섰으나, 6회까지 15%를 넘지 못한 채 답보 상태다. "법정 드라마가 넘쳐나지만, 주연배우와 상황, 대사가 조금씩 달라질 뿐 의문의 빗길 살인 사건, 숨겨진 검은 배후, 불륜, 폭력, 복수로 이어지는 줄거리는 질리도록 변함이 없다."(김윤덕 기자) "뉴스도 칙칙하고 드라마마저 컴컴하니 벚꽃이나 실컷 봐야겠다."(최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