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은 역사학도, 부업은 맛집 전도사"

"35년 경제 관료로 근무하면서 한국이 참 대단하다고 늘 생각했어요. 지난 반세기 동안 전 세계 GDP가 약 7.5배 증가할 때 한국 GDP는 38.6배 늘어나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됐습니다. 흔히 GDP를 인력과 기술, 자본이 결정한다고 하죠. 그런데 이 요소들만으론 우리가 이룬 기적이 설명이 안 돼요."

김석동(64) 전 금융위원장은 "이 기적의 원동력이 늘 궁금했다"고 말했다. 2013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 '역사학도'로 변신한 그는 2015년부터 법무법인 지평이 지원하는 1인 연구소 '지평인문사회연구소'를 꾸려오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 벽면엔 고조선 역사지도, 중국지형도, 광개토대왕 원석 탁본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기적의 열쇠는 한국인의 DNA입니다." 그가 내린 결론이다. "광활한 유라시아 대초원을 무대로 활약하던 기마민족 전사들의 DNA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고조선을 비롯한 흉노·선비·돌궐·몽골 등 기마유목민족의 발자취가 그의 주된 관심사다. 신문에 '실크로드 탐방기'를 연재했고, 북방민족사학자인 전원철 박사의 고대 역사서 번역도 지원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이제야 본업으로 돌아온 것 같아 출근길이 신명 난다"고 했다. 학창 시절 그는 역사학자를 꿈꿨다. 집안 반대로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경제 관료로 줄곧 살았다. IMF 외환위기 대책 마련, 부실 저축은행 퇴출 등 굵직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며 '칼잡이'로 불렸다. "전쟁터 군인같이 공직 생활을 했어요. 늘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편안할 새 없었죠."

그 시절 점심 한 끼로 시끄러운 마음을 달랬다. "만원 한 장으로 얼마든지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지론에서 퇴임할 때 후배들에게 약속했다. "싸고 맛있는 음식점 목록을 정리해 줄게." 단품 메뉴 위주로 시내 맛집을 정리해 비매품으로 찍은 책이 입소문을 탔다. 판매 요청이 쇄도해 정식 출간('한 끼 식사의 행복')했다. 요샌 일간지에 음식 칼럼도 쓴다. 그는 "부업으로 '맛집 전도사'가 됐다"며 웃었다.

본업 '역사학도'로 그간 30여 차례 유라시아 대초원에 나가 기마민족의 생활과 유물·유적을 살폈다고 한다. "안 보고는 못 견딘다"는 그는 고조선 국경을 보고 싶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탔고 지난 2월엔 라오스에 다녀왔다. "라오스 북부 산간지방에 묘족의 후손 몽족이 산다고 해서 궁금해서 갔어요. 묘족은 우리에게 익숙한 치우천왕의 후예라는 사람들입니다."

산골짜기에서 아기 업은 여성을 만났다. "묘족의 후예가 맞느냐?"고 묻자 말없이 아기 바지를 훅 깠다고 한다. 아기 엉덩이엔 선명한 몽고반점이 있었다. "하나하나 궁금한 것 알아가고 확인하는 게 즐거워요. 사람들은 '골프나 치면서 편하게 살지 왜 그런 험지에 가느냐'고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매주 군부대와 학교, 행정기관에 나가 '대한민국 경제와 한민족 DNA'를 주제로 강연한다. "기마민족의 개척자 근성과 생존 본능을 발휘해 경쟁을 두려워 말고 세계 무대에서 힘껏 뛰어보라"는 내용이다. 청년이 모인 곳이 1순위다. 군부대 강연을 제일 좋아한단다. "신바람 나요. 내 강의를 들은 군인들이 발 구르고 난리가 나니까요. '헬조선'을 만든 건 기성 세대 책임입니다. 기마민족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교범 없이 살아남았어요. 청년들에게 '대한민국은 꼭 잘된다'는 희망을 불어넣고 싶어요."

사무실을 나서는데 프린트 된 강의 자료를 건넸다. "소그룹이라도 젊은 사람들 모으면 강연해드릴게. 돈 안 받아도 좋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