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예술, 자연… | 다큐멘터리스트·사진작가 박종우] “사라져가는 히말라야의 한 시대를 기록합니다”

다큐멘터리는 사람의 삶과 문화, 자연을 진중하게 담아내는 도구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이라면, ‘티베트 소금계곡의 마지막 마방’, ‘차마고도(茶馬古道) 100일의 기록 캄’, ‘사향지로’란 다큐 프로그램을 알 것이다.

우리나라에 ‘차마고도’라는 이름을 최초로 알린 이 명품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만든 박종우(59)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큐멘터리스트’이자 30년 세월 동안 히말라야의 소수민족을 사진에 담아오고 있는 사진작가다. ‘히말라야산맥 3,000km에 사는 소수민족들의 모습을 찍는 것이 자신의 평생 작업’이라고 말하며 세계의 오지를 무대 삼아 뛰어다니는 그를 종로구 누상동의 ‘인디비전’ 작업실에서 만났다.

사진으로 보던 부드럽고 조금은 장난기 있어 보이는 인상과 달리 그의 모습에서는 히말라야, 남극, 아프리카 등을 거침없이 누비며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을 강인한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Q 사진은 언제부터 찍기 시작하셨나요?

A “어머니께서 취미로 사진을 찍으셨는데 제가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카메라를 물려주셨어요. 그 카메라로 산과 들을 다니며 이것저것 찍고 다녔어요. 사진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군 제대 후 신문사 출판국에 사진기자로 입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직업이 되었어요.”

Q 사진기자는 주로 단신 보도 사진만 주로 찍으셨을 텐데 이렇게 자연 탐사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A “당시 정홍택이라는 선배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연예부 기자 1호로 미스코리아 대회 사회도 보고 했던 분이에요. 그분이 ‘악우회(岳友會)’ 회원이었는데 1984년에 <월간 스포츠레저>란 잡지를 창간했죠. 사실 <월간山>에 대항하는 아웃도어 잡지를 만들자 해서 창간한 거였어요. 저도 거기로 갔죠. 그 잡지에서 처음 취재한 것이 인수봉의 클라이머들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클라이밍을 안 해봤으니까 인수봉을 올라갈 재주가 없었죠. 결국 유한규 선배 등에 ‘업혀서’ 올라갔어요. 그 당시 가이드를 맡았던 악우회에서 유한규 선배가 제일 실력이 좋은 등반가였거든요. 그것을 계기로 유 선배랑 친해져서 1987년에 히말라야도 같이 갔죠.” 

Q 왜 히말라야였나요?

A “그 <스포츠레저>라는 잡지에서 ‘한국의 오지’라는 기사를 담당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유한규 선배랑 여행도 할 겸 계획했던 거였어요. 이왕 갈 거 좀 오래 있다 오자 해서 쌍용그룹을 찾아가 스폰서를 부탁했어요. 마침 ‘코란도’란 지프차를 처음 만들던 때라 ‘차가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가서 자동차를 홍보해 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그 제안이 통해 후원금 1억3,000만 원과 코란도 2대를 지원받았다. 단, TV에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간 그의 첫 히말라야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을 따라 이어지는 힌두쿠시산맥과 훈자지방이었다.

1987년 8월부터 6개월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등을 돌며 촬영했는데 크고 작은 사고가 많이 나서 제대로 찍지 못했다. 다행히 다큐멘터리는 ‘히말라야를 가다’란 제목으로 TV에 방영되었다. 그의 삶 속에 히말라야가 들어온 것은 이때부터였다. 해발 1,000m 안팎의 산만 오르내리던 그에게 만년설에 뒤덮인 라카포시봉(7,788m)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는 ‘아, 이제부터 이걸 찍어야겠다’고 다짐했다.

Q 그때 지금의 ‘인디비전’이 생기게 되는 만남이 있었군요.

A “네, 프랑스에서 온 취재팀을 만났어요. 카메라맨, 작가, 포토그래퍼 이렇게 3명이 카피르칼라시라는 부족을 취재하고 있더군요. ‘당신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으니 ‘다큐 프로덕션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방송국에서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유럽에는 이미 프로덕션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국에 납품하는 시스템이었던 거죠. ‘아, 이거다’ 싶었어요. 나도 프로덕션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하지만 그의 계획은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88올림픽 기간에만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신문사에 재입사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1995년까지 8년을 더 일했다. 1995년 신문사를 나온 그는 비로소 ‘인디비전(Indivision)’이라는 다큐 프로덕션을 차렸다.

Q 혼자서 시작하는 게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A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어요. 일단 장비부터 구하자 싶어 용산으로 갔죠. 비디오카메라 한 대가 4,000만 원이라고 하더군요. 집 지으려고 사두었던 땅을 팔았어요. 1억2,000만 원 정도였는데 카메라 사고 은행 대출금 갚고 나니 1,000만 원 남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엔 삼각대나 마이크, 조명 같은 카메라 액세서리가 필요한 거예요. 남은 1,000만 원에 200만 원을 빌려서 샀어요. 그런데 이제 편집기가 필요한 거예요. 그것도 4,000만 원이라고 하더군요. 그건 도저히 살 수 없어 한동안은 다른 프로덕션에 셋방살이를 하면서 겨우겨우 편집했죠.”

다큐멘터리는 동영상만 찍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편집부터 자막, 그래픽, 음향 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종합 예술이었다. 그는 모든 걸 바닥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1996년 ‘KBS 일요스페셜’에 기획안을 내 중학생 두 명이 MTB를 타고 백두산에 가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신고로 공안국에 끌려가는 등 힘들게 완성한 다큐멘터리는 우여곡절 끝에 1년 후인 1997년 KBS가 아닌 SBS에서 어린이날 특집으로 방영되었다.이후 그는 여러 곳에서 다큐 제작 의뢰를 받았다.

Q 이제 그야말로 탄탄대로 아니었습니까?

A “그럴 뻔했죠. ‘바다와 사람들’이라는 54부작짜리 다큐를 제작하려고 준비하던 중 1997년 말에 IMF 외환위기가 터졌어요. 달러가 너무 올라 다큐 제작을 포기했어요. 그때 여의도 사무실도 문을 닫았죠. 우선은 달러를 벌어야겠다 싶어서 종로구 삼청동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렸어요. 원래 60세가 되면 게스트하우스를 차리려고 생각했었거든요.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게스트하우스일 거예요. 그런데 홍보가 안 되니 찾아오는 손님이 없었죠. 방법을 찾다가 인터넷 카페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컴퓨터를 몇 대 설치하고 인터넷도 깔았죠. 이게 또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카페예요. 홈페이지를 만들어 게스트하우스 홍보를 하고 언론매체에도 소개가 되니 6개월 후부터는 손님이 꽉 차더군요. 나중엔 <론니플래닛>에 소개될 정도였으니 인기가 좋았죠.”

Q 그런데 왜 다시 다큐를 만들게 되셨나요?  

A “2년 정도 지나니 몸이 근질근질하더군요. IMF 외환위기도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 KBS에서 몽골리안 루트에 관한 다큐를 찍자는 제의를 받아서 바로 떠났죠. 알타이산맥이나 베링해협, 몽골 초원으로 다니니까 재미있었죠. 그때부터 다시 다큐 일을 시작했어요.”

Q 이후 수많은 다큐를 만드셨지만 ‘차마고도’ 시리즈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A “차마고도는 2003년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 중국 윈난성의 고서점에 갔는데 벽에 한 장의 사진이 붙어 있더군요. 묵직한 자루를 두 개씩 짊어진 말들의 캐러밴 행렬을 찍은 사진이었어요. 서점 주인에게 물어보니 차마고도를 다니는 마방들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그들을 만나려면 티베트 라싸 동쪽 지역인 ‘캄’으로 가보라고 했어요. ‘캄파(캄 사람들)’는 1989년 티베트 라싸에서 만난 적이 있었어요. 오체투지로 순례를 온 그들의 눈빛이 너무 강렬해서 기억하고 있었죠. 캄은 중국 정부가 외부에 공개하기를 꺼리는 미개방 구역이어서 그때는 취재하지 못했었죠. 그런데 세월이 지나 사진에서 다시 그들을 만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차마고도와 캄을 취재해 보기로 했어요.”

Q 차마고도는 3년간이나 촬영하셨다는데.

A “2004년 초여름부터 윈난성에서 티베트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차카롱(중국명 옌징)의 계곡에서 촬영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가을 즈음에 비좁은 절벽길에서 촬영하다가 말에 떠밀려 40m 절벽 아래로 떨어졌어요. 천만다행으로 절벽에서 자란 가시나무에 걸려 살았는데 들고 있던 1억 원짜리 HD ENG카메라가 고장 나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그때까지 촬영한 것들만 가지고 다큐를 만들어서 KBS에서 ‘티베트 소금계곡의 마지막 마방’이란 타이틀로 방영되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차마고도를 최초로 다룬 다큐였죠.”

그는 팀을 다시 꾸려 2005년 다시 캄으로 건너가 차마고도의 구석구석을 취재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2006년 SBS에서 ‘차마고도-1000일의 기록 캄’으로 방영되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그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Q 그리고 이어지는 차마고도 시리즈가 2008년의 ‘사향지로’지요?

A “2003년 엄홍길 대장이 에베레스트 티베트~네팔 구간을 종단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거기 촬영팀으로 갔었어요. 저는 네팔 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상이 너무 안 좋아 엄 대장이 정상에서 티베트 쪽으로 되돌아갔죠. 갑자기 할 일이 없어져서 카트만두로 돌아와서 뭐 다른 거 찍어갈 거 없나 살펴보다가 잘 알고 지내던 ‘윈드호스 트레킹’의 앙카르마가 자기 고향인 탕보체에 계곡이 있는데 그곳에 ‘낭파라(Nangpa La)’라는 5,700m 정도 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개가 있다는 거예요. 그 고개를 티베트의 캐러밴이 넘어가 네팔 남체바자르에서 물건을 판다는 거죠. 차마고도를 넘어 서쪽의 유럽까지 이어지는 히말라야 교역로인 ‘사향지로’였어요. 이곳은 캄 취재가 끝난 후 2007년에 티베트 쪽으로 해서 들어갔어요.”

Q 낭파라는 외국인들은 거의 들어가지 못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요.

A “맞아요. 중국과 네팔 국경이죠. 당시 티베트의 독립운동이 거세었고 베이징올림픽을 목전에 둔 때라 국경을 아예 폐쇄하다시피 했었죠. 그래서 방법을 찾다가 청계천에서 가짜 롤렉스시계와 삼성 휴대폰을 사가지고 갔어요. 그걸 국경수비대 사령관한테 뇌물로 주고 통과했어요. 하하. 그때 가짜 주민등록증도 만들었어요. ‘중국 길림성 출신의 조선족 박영철’이라고. 지금이니까  이야기하는 거죠.”

국경을 무사히 통과한 그는 마을의 캐러밴을 따라 낭파라까지 동행하며 촬영했다.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낭파라를 카메라에 담은 것이었다. 그는 “낭파라에서 하루 정도만 네팔 쪽으로 내려가면 남체바자르였으나 국경을 넘다가 발각되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아서 네팔 쪽으로 100m 정도만 넘어갔다가 되돌아왔다”며 웃었다. 이때의 촬영은 2008년 SBS에서 ‘사향지로’란 다큐로 방영되었다.

이렇게 몇 개월 동안이나 해외의 오지에 머물며 위험하고 고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열정과 집념의 결과다. 그는 마을 뒤에 마을이 있는 걸 참지 못한단다. 눈에 보이는 마을은 끝까지 꼭 가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지금도 산을 보면 ‘저 산 뒤엔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든다고 한다. 

Q 히말라야 사진 작업이 30년이 되었습니다. 왜 ‘히말라야의 소수민족’인가요?

A  “저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것들, 그래서 미래엔 볼 수 없게 될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거기엔 자연도 있고 사람도 있고 문화도 포함되지요. 차마고도만 해도 이젠 마을에 호텔이 생기고 외국인들이 트레킹하러 가는 곳이 되었잖아요. 히말라야의 오지마을도 마찬가지예요. 없던 길이 생겼고 전기가 들어오게 되었어요. 현대문명을 접하게 되면서 그 사람들의 의식과 전통문화도 바뀌고 있어요. 그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얀마까지 이어지는 히말라야산맥 3,000km 속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을 사진에 담는 것을 평생작업으로 하는 거죠.”

그는 2009년에 <히말라야: 20년의 오디세이>란 제목으로 사진집을 냈고 이후에도 수시로 히말라야를 드나들며 사진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차마고도 시리즈 이후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는 것에도 열심이다. 2009년 가을부터는 우리나라 최후의 오지인 비무장지대(DMZ)를 2년 동안 촬영했다. 누구나 갈 수 없는 곳이기에 해외의 다큐멘터리 취재 일정을 모두 포기하고 ‘올인’한 작업이었다.

그는 비무장지대를 촬영하면서 사람이 살던 마을을 다시 나무와 풀이 뒤덮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분단의 심상을 임진강의 풍광에 담아 <임진강>이란 사진집으로 냈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울의 골목길과 고궁, 한국의 건축 등을 사진과 영상에 담고 있다. 그는 이런 작업들에 대해 “결국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기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편집을 위한 컴퓨터가 놓인 그의 작업실은 좁았지만 그의 마음은 늘 벽에 걸린 세계지도에 가 있었다. 그렇게 많은 오지를 드나들었으면서도 여전히 지도를 바라보며 이곳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하는 그는 호기심 많은 영원한 소년이요, 미지의 세계를 찾아나서는 탐험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