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여성을 '초등생 살해범' 엄마로… 사람잡는 신상털이

"거기 ××고등학교에 ○○○ 선생님 있죠? 어떻게 그런 범죄자의 부모를 학교에 근무시킬 수가 있어요? 당장 잘라주세요."

이달 초, 인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교사 A씨를 해고하라"는 항의 전화가 수도 없이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A씨가 지난달 29일 인천 연수구 동춘동에서 발생한 초등학교 살인 사건 가해자(17)의 모친으로 밝혀진 만큼 학교에서 근무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A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올해 24세로, 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는 직원이다. 열일곱 살짜리 딸은커녕 결혼도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불리긴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아니다. 그런데도 가해자의 어머니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항의 전화와 해고 압력에 시달린 것이다.

A씨를 괴롭힌 헛소문의 출처는 회원 수 15만명이 넘는 인천 지역 주민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것으로 밝혀졌다. 잔혹한 사건에 분개한 일부 네티즌의 무분별한 '신상 털기'가 A씨 같은 엉뚱한 피해자를 낳은 것이다.

A씨에 대한 신상 털기는 이 사건 직후 "가해자의 부모가 유복한 대학병원 의사와 교사인데, 반성은 않고 '조현병'을 핑계로 감형(減刑)에만 힘쓴다"는 소문이 돈 게 발단이 됐다. 일부 네티즌은 "가해자 부모도 반성해야 한다" "이 사건이 이대로 묻혀서는 안 된다"며 가해자 부모의 신상과 근무지를 찾아 나섰다. 마구잡이식 신상 털기에 대해 '가해자 부모 신상 유포는 범죄다' '가해자 부모의 인권도 존중해줘야 한다'는 반론을 제기한 네티즌들도 있었지만, 소수 의견에 묻혔다.

A씨의 존재도 이때 알려졌다. "××고등학교에 가해자 모친과 이름이 같은 교사 ○○○이 있다"는 글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퍼진 것이다. 이를 본 네티즌들이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고 A씨 학교로 전화폭탄 공세를 한 것이다.

A씨는 영문도 모른 채 '살인범의 엄마'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연관검색어'에는 A씨의 실명과 학교 이름까지 등록됐다. 학교 학생들조차 "우리 학교에 그 사건 가해자 엄마가 진짜 있나요"라고 물어볼 정도가 됐다.

인천 시내 병원들도 잘못된 소문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가해자의 아버지가 의사라는 소문을 듣고 시민들이 전화를 걸어 "김××네 아버지 거기 의사인가요"라고 물어본 것이다. 인천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해명을 해도 전화가 계속 걸려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라고 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인천 연수경찰서는 "가해자 모친이 교육계에 종사한다는 것은 헛소문"이라고 밝혔다. A씨는 13일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경찰 사이버수사팀에 '허위 사실을 유포한 네티즌을 처벌해달라'는 고발장을 접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확한 근거 없이 카더라식 소문만 믿고 관련 없는 사람들의 신상을 무분별하게 터는 사람들에게 정말 화가 났기 때문이다.

A씨는 "항의전화를 했던 시민들 가운데 '딸 가진 부모 맘을 이해해 달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20대인 나도 누군가의 딸인 걸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며 "확실하지도 않은 사실을 왜 퍼트린 건지, 그게 정말 정의로운 일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