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마음속에서 17년 살았죠"

"나이는 비밀입니다(웃음). 범죄자들이 해코지하려던 적이 몇 번 있어서 개인정보에 좀 민감하거든요."

오는 30일 명예퇴직을 앞둔 '국내 1호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권일용 경찰청 범죄행동분석팀장(경감)은 17일 전화 인터뷰에서 "17년간 '범죄자'처럼 생각하고 살았으니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는 오랫동안 소홀했던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89년 순경으로 경찰 생활을 시작한 뒤 일선 형사와 현장 감식 요원을 거쳐 2000년부터 프로파일러로 활동했다. 경찰 근무 기간 27년 8개월의 대부분을 범죄자와 씨름하며 보낸 것이다. 정년이 8년 남았지만 그는 "이제 완전히 '번아웃(소진)'된 것 같아 나를 다시 채울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 한국 범죄사(史)에 남을 만한 연쇄살인범들은 모두 그의 조사를 받았다. 권 경감은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13명을 연쇄살인 한 정남규를 "쾌락을 위해 살인을 하던 진짜 괴물이자 악(惡)의 끝판왕"이라고 회상했다.

처음부터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부모님의 권유로 경찰이 됐다. 막 순경티를 벗을 때쯤 서울시경(현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기동대에 배치돼 '범죄와의 전쟁'에 투입됐다. 살인·마약·인신매매 같은 범죄 세계와 본격 대면했다. 2년쯤 전쟁을 벌이다 1993년 서울 동부경찰서(현 광진경찰서)로 발령 나면서 과학수사라는 새 분야와 만났다. 그는 "당시 강력반 막내라서 감식 담당을 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어느새 '지문(指紋) 채취의 달인'이라 불리고 있더라"고 했다.

지문 채취를 잘해 특진까지 했던 권 경감을 프로파일러로 발탁한 것은 윤외출 당시 시경 감식계장(현 경무관)이었다. 경찰 내부에서 프로파일러 양성을 추진하면서 후보자를 물색하다 권 경감을 선발한 것이다. 국내 1호 프로파일러가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물론 1호라는 타이틀이 영광만은 아니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했던 시간'은 길고도 힘들었다. 범죄심리 전문가들의 세미나를 쫓아다니고 40년 치 살인사건 자료를 분석했다. 17년간 프로파일러로 분석한 범죄자만 900명이 넘는다. 권 경감은 "프로파일링은 범죄자를 미치광이로 낙인찍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범죄심리 분석을 통해 범죄자의 패턴을 발견해 미래의 범죄 예방에 도움을 주기 위한 수단"이라며 "누구든 천성이 범죄자라고 예단하는 게 아니라 무죄라고 생각하고 분석을 시작해야 정확한 분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에는 프로파일러 34명이 활동하고 있다. 경찰청은 "권 경감의 노력 덕분에 우리 경찰의 범죄심리 분석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 경감은 "한동안은 그간 모은 자료 를 정리하면서 쉴 생각이지만 친정인 경찰이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파일러(profiler)

주로 범죄 수사에 쓰이는 프로파일링 기법을 담당하는 범죄심리분석관을 가리키는 말. 프로파일링 기법은 범죄 현장의 증거를 분석해 용의자의 신상을 추측하거나, 범죄자 심리 상담을 통해 반복되는 범죄 유형을 분류·분석해 유사 범죄 수사에 활용할 때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