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코너] 사이렌 켜기 눈치보는 구급차

"응급 상황인데도 사이렌 소리를 크게 낼 수 없어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광주광역시 119구급대원 김명수(가명)씨는 동구 학동에서 구급차를 몰 때마다 사이렌 음량을 의식적으로 줄이고 있다. 학동 홍림교 사거리 부근에 걸려 있는 현수막 때문이다. 이 현수막엔 큰 글씨로 '여기는 주택가입니다. 응급 차량 사이렌(경적) 소음 조금만 줄여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이 부근 이면도로에도 똑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 현수막은 인근 아파트·주택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광주 동구청이 직접 설치한 것이다. 광주 동구청 관계자는 "학동에만 대형 아파트 단지가 6개가 있는데, '한밤중에 사이렌 소리 때문에 잠을 깬다'는 민원이 계속 들어와 2~3달 전 현수막을 내걸었다"고 했다.

이곳에 유독 사이렌 소리가 많이 들리는 이유는 뭘까. 아파트·주택가에서 불과 몇백m 떨어진 곳에 대형 병원 2곳(조선대병원, 전남대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병원으로 향하는 119구급차뿐만 아니라 사설 구급차들까지 사이렌을 켜는 통에 소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게 주민들의 입장이다. 수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박모(44)씨는 "많을 땐 사이렌 소리가 다섯 번 이상 들리는 통에 깜짝 놀라곤 한다"고 했다.

현수막 설치 이후 이 지역에서 사이렌 소음은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급한 응급 환자를 태운 구급 차량이 민원을 의식해 사이렌을 켜지 못하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구급대원 김씨는 "도로가 꽉 막혔을 경우 사이렌을 통해 빨리 비켜 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현수막이 내걸린 이후 출동할 때 사이렌을 켜려면 굉장히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사이렌 갈등은 이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년 서울시 120다산콜센터에 접수된 사이렌 관련 민원은 300건이 넘는다. 전국의 소방본부는 사이렌에 대한 민원이 줄을 잇자 응급 환자의 이송을 위해 출동할 때 90~120㏈(데시벨·국토교통부 허용 기준)을 넘지 않도록 구급대원들을 교육하고 있다. 보통 지하철 소음이 90㏈,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 나는 소음이 120㏈ 정도다. 작년 7월부터 119구급차나 사설 구급차가 긴급하지 않은 상황에 무단으로 사이렌을 울리면서 도로를 운행하다 적발될 경우 4만~7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