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주먹만 한 영계 한 마리를 점심으로 먹었을 뿐인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삼계탕 집을 나서면 왠지 몸에 좋은 보약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처럼, 느낌만으로 마음이 푸근해지고 든든한 포만감이 느껴지는 음식들이 있다. 보쌈도 그런 음식 중 하나인데 야들야들하게 잘 삶은 돼지고기를 마늘 한 쪽과 고추장 찍은 고추와 함께 아삭한 보쌈김치에 싸서 입안 한가득 씹다 보면 “먹는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종로에서 청계천 다리를 건너 방산시장 건너편에 있는 ‘장수 보쌈(원식당)’은 40년 가까이 보쌈을 만들어온 이 지역의 노포(老鋪)로, 긴 업력에 걸맞게 흠잡을 데 없는 맛있는 보쌈백반을 내놓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인 ‘원할머니 보쌈’이 황학동에서 조그만 가게로 영업을 시작하던 초창기에 오늘 소개하는 장수 보쌈의 주인도 창업멤버로 일했던 인연으로 지금까지 원식당과 장수 보쌈이라는 상호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식당 위 간판에는 ‘장수 보쌈’이, 식당 앞에는 ‘원식당’ 이라는 입간판이 놓여 있다.
보쌈백반을 주문하면 배춧잎에 곱게 싼 보쌈김치를 먹기 좋게 가지런히 썰어 내오는데 아삭하고 시원한 맛이 고소한 돼지고기와 최상의 궁합을 보여준다. 이 보쌈김치는 먹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단맛이 조금 과하다는 평을 듣기도 하는데 짠맛이 강조된 일반 김치와 달리 달달한 단맛이 돼지고기의 기름지고 고소한 맛과 잘 어울려 함께 먹었을 때 보쌈의 풍미를 높이는 효과를 주는 듯하다.
비계와 살코기가 적당한 비율로 섞인 삼겹살 부위를 잡내 없이 촉촉하게 잘 삶아 수준급 이상의 맛을 보여준다. 국내산 돼지고기라는 원가의 압박에도 섭섭지 않은 양(量)이 제공되어 성인 남자가 먹더라도 그다지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보쌈백반을 주문하면 주인공인 보쌈 이외에도 국을 포함해 대여섯 가지의 반찬이 함께 나오는데 대부분 나물이나 장아찌 같은 평범한 밑반찬들이지만 기본적으로 음식 솜씨가 좋아서인지 모든 반찬이 맛깔스럽다.
보쌈과 함께 이런저런 반찬의 맛을 보다 보면 밥 한 공기를 쉽게 비우게 되는데 특히 이 식당의 밥은 질 좋은 쌀을 사용해 근래 식당에서 먹은 밥 중 가장 좋은 상태를 보이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장수 보쌈은 을지로의 도매상가들 틈에 끼어 있어 주의해서 찾지 않으면 코앞에 두고도 지나쳐 버릴 정도로 작은 식당이다. 식당 내부도 전형적인 서민 식당의 모습으로 협소하고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랜 세월 다뤄온 보쌈의 내공이 만만치 않고 기본적인 음식 솜씨가 뛰어나 보쌈백반을 비롯한 점심은 물론, 저녁때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보쌈을 안주로 소박하게 한잔하기에 최적화된 식당이니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한번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장수 보쌈(원식당)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378-2 (지번 : 서울특별시 중구 방산동 84-1)
전화 : 02-2272-2971
영업시간 : 11:30 ~22:30 (일요일 휴무)
메뉴 : 보쌈백반 9,500원, 보쌈(1접시)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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