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님 스태프로 '영화' 배웠죠"

'제군들은 왜 여기에 모여 있는 줄 아나?'

배우 안재홍(31)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정봉 역에 이어서 신작 영화 '임금님의 사건수첩'(26일 개봉) 주연을 맡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사관과 신사'(1982년)에 나온 대사가 아니었으면 배우의 꿈을 접을 뻔했다. 2004년 건국대 영화·애니메이션학과 실기 시험장에서 받았던 대본 속 대사였다. 당시 경쟁률은 30대1을 넘었다.

부산에서 고교를 다닌 그는 대사를 사투리로 바꿨다. '느그들이 와 모인 줄 아나?' "이미 대학 두 곳에서 떨어졌고 세 번째로 치르는 실기 시험이라 절박할 수밖에 없었죠. 다급한 마음에 사투리 연기가 낫겠다 싶었는데 당시 심사위원인 배창호 감독님이 귀엽게 봐주셨나봐요."

대학에 입학한 안씨는 매 학기 단편영화를 찍었다. 졸업 직후에 촬영한 18분짜리 영화 '검은 돼지'에선 각본과 주연, 감독까지 도맡았다. "200만원을 들여서 친구들과 함께 사흘간 촬영했죠. 물론 무보수였고 촬영을 마친 뒤 5차까지 뒤풀이를 하느라 '예산 초과'되고 말았죠."

학비는 학교 근처 영화관 아르바이트로 벌었다. 새벽 3시까지 극장 정리를 하다 보니 '비밀 데이트'를 나온 학교 커플을 먼저 알아보는 재미가 컸다. "당시 팝콘을 튀기고 극장 청소를 했던 경험 때문에 지금도 관객으로 영화관에 가면 쓰레기는 꼭 들고 나온다"고 했다.

제대 후 복학했을 때 홍상수 감독이 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2011년 홍 감독의 '북촌방향'부터 안씨는 단역 배우 겸 제작부로 자청해서 촬영장에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현장 심부름부터 도맡아서 했죠." 홍 감독과의 인연은 2012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과 올해 배우 김민희에게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이어졌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안씨는 조감독 역할을 맡았다.

안씨의 영화 경력에서 전환점이 된 작품은 2014년의 '족구왕'. 그는 여자 친구도, 취업 대책도 없는 복학생 역할로 '독립영화계의 송강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올해는 '임금님의 사건수첩'으로 상업영화 주연을 처음 맡았다. 조선 예종(이선균)과 함께 궁중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 해결에 나서는 신입 사관 '윤이서' 역을 연기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야구 영화 '머니볼'에서 복잡한 야구 통계는 꿰고 있지만 정작 일상생활에는 서투른 부단장 '피터 브랜드'(조나 힐)를 보면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궁궐처럼 복잡한 정치적 공간에 들어가면 아무리 진지하고 침착하려고 해도 어수룩하고 허둥대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겠지요."

코믹한 역할에 집중된 연기 폭을 넓히는 것이 그의 과제다. 다음 달 방송하는 TV 미니 시리즈 '쌈, 마이웨이'에서는 홈쇼핑 업체 대리역으로 로맨스 연기에도 도전한다. 그는 "연기에 대한 고민은 많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젊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있으니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