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재'의 일탈 "혼자 놀고 싶습니다!"

"남자는 늘 탈출을 꿈꾼다. 아무리 자유로운 위치에 있어도 (탈출을) 생각한다."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산문집 '세계폭주'에서 남자의 속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탈출을 향한 동경은 그 자체로 남자의 본질이란 얘기다.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사는 대다수 남자들은 훌쩍 떠나고픈 소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TV조선이 25일 밤 11시 첫 방송 하는 '아재 독립 만세! 거기서 만나'는 그 로망을 대신 실현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가수 이현우(51), 배우 김수로(47), 요리사 최현석(45)이 한적한 교외에 마련한 아지트에서 2박3일간 지내며 재충전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지난 20일 경기 과천 촬영장에서 만난 이들은 첫날 함께 구입한 분홍색·보라색 고무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종일 돌아가는 카메라 앞에서도 꾸미는 기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촬영장에는 컨테이너 박스 크기의 조립식 주택 3채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세 남자는 한 채씩 배정된 집을 각자 희망 사항대로 꾸몄다. 유치하고 엉뚱해 보일지 몰라도 남자들은 좋아하는 물건으로 가득 채운 자신만의 공간을 꿈꾼다. 이현우·김수로·최현석은 "집만 봐도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입을 모았다.

맏형 이현우 집의 주제는 '휴식'과 '놀이'. 한쪽 벽 전체를 책장으로 만들고 책장을 책 대신 캔맥주로 채웠다. 그 옆엔 맥주로 가득 찬 업소용 냉장고가 있다. '갤러그'가 들어 있는 옛날 오락실 전자오락기와 TV까지 갖췄다.

최현석의 집은 오븐과 싱크대가 있는 '나만의 요리 연구실'. "일할 때는 시도하기 어려웠던 요리를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원 없이 게임을 하려고 컴퓨터를 들이고 피규어(모형 장난감)와 애니메이션 포스터로 집안을 장식했다.

김수로의 집은 "콘셉트가 없는 게 콘셉트"란다. 운동 마니아답게 집 앞에 역기를 설치하고, 실내에는 영화 감상용 빔프로젝터와 맥주 제조 기구를 뒀다. 그는 "이번 기회에 직접 수제 맥주를 만들어 보고 싶다"며 "친구들이 많이 놀러 오니까 2층 침대도 하나 살 생각"이라고 했다. 게스트는 제작진이 섭외하지 않는다. 이현우·김수로·최현석이 지인을 직접 부른다.

세 명의 '아재'에게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은 사치에 가깝다. "외국 출장 때 잠깐 숨 돌리는 걸 빼면 하루 쉬는 날도 거의 없어요."(김수로) "어쩌다 쉬는 날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니 혼자만의 시간은 사실 '제로'죠."(이현우) "혼자 쉬거나 잠을 자면 나쁜 아빠가 된 것 같고 눈치가 보여서…."(최현석)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즐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최현석은 "이 프로그램을 핑계 삼아 놀겠다고 작정하고,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을 잔뜩 적어왔다"며 "하지만 여기 와서도 조리 도구를 설치하고 있으니 어느새 일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현우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하듯이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야 쉴 때도 알차게 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고 했다.

김수로는 "이 프로그램은 오래, 계속 하고 싶다"고 했다. "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이런 시간이 처음이다 보니 생각처럼 잘 안 되네요. 조금 더 지나야 노하우가 생길 것 같아요. 중년 남성에게 잘 놀고 잘 쉬는 법을 제시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