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축계의 '맏형', 윤승중의 반세기를 돌아보다

"대법원 청사 건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대학 3학년 때 대법원 청사 설계 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됐는데, 그로부터 30년 뒤 다시 공모한 대법원 설계경기에서 또다시 당선돼 제 손으로 완공까지 했으니까요."

한국 현대건축사의 산증인인 윤승중(80)의 50년 건축 인생을 돌아보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8월 6일까지 열리는 '윤승중 건축, 문장을 그리다'전이다. 서울대 건축과를 나와 김수근 건축연구소를 거쳐 국내 굴지의 건축사무소 '원도시건축연구소' 대표가 되기까지 반세기 동안 그려온 건축 도면과 스케치, 모형 등 150여 작품을 선보인다. 한 줄의 문장처럼 건축물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생각이 담기는지 보여주는 전시다.

대법원을 비롯해 청주국제공항, 수원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한일은행 본점, 조선일보 사옥 등 대표작들이 많지만 윤승중은 스타이기보다는 건축계 '맏형'으로 존경받는다. 김수근 건축연구소에서 설계팀을 이끌며 민현식, 유걸, 김원 같은 후배 건축가들을 키워냈다. 정다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건축은 예술품처럼 작가 단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으로 협업해서 만든다'는 것이 윤승중의 철학"이라며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기보단 젊은 건축가들의 그늘이자 후원자가 되어 조용히 한국 건축계를 뒷받침해왔다"고 말했다.

전시엔 윤승중 설계로 완공된 작품들만 모여 있지 않다. 정부종합청사, 부산 시청사등 설계경기에 응모했으나 낙방한 작품들까지 모두 선보인다. 한국 현대 건축사의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위해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로 무산된 '행정수도 이전 계획안'이 대표적이다. "전쟁을 우려해 통일이 될 때까지만 수도를 충남 공주군 장기리로 옮기는 프로젝트가 시작됐지요. 나는 도심 부분을 맡았는데,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하는 바람에 중단됐습니다." 1966년 일어난 한강 홍수가 여의도 탄생의 시작이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홍수철 한강을 어떻게 다스릴 것이냐가 서울이 대도시로 성장하는 데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과제였으니까요. 여의도를 시작으로 한강을 넘어 서울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게 된 겁니다."

윤승중에게 건축이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다. 열한 살까지 살았던 서울 다동 한옥이 윤승중 건축의 원형이자 첫 기억이다. "일상의 잡다한 생활들을 포용하되 단순하고 소박하며 설화적인 분위기가 있는 곳"이 그가 살고 싶은 집이다. 서울 중구 조선일보 사옥을 이웃한 성공회 성당을 배려해 붉은 벽돌집으로 지은 것도 그 때문이란다. "흔히 건축을 외관의 조형미에 중점을 두고 평하지만, 실제 사람들은 그 내부에서 만나 사적인 삶을 살지요. 큰마루, 즉 '당(堂)'이 건축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건축 문외한도 재미있게 보고 읽을 수 있는 전시다. (02)2188-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