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층민 그린 '위로의 작가'로 기억되길"

"나이가 들어 '삐걱거리는 물레방아'가 됐지만, 춥고 어두운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소설을 계속 쓸 것이다. 사람들이 윤동주 시인이라고 하면 '부끄러움'을 떠올린다고 하는데, 나중에 소설가 김주영을 생각할 땐 '위로'란 말을 떠올려줬으면 좋겠다."

소설가 김주영(78)씨가 26일 신작 장편소설 '뜻밖의 생'(문학동네)을 내며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올해로 등단 47주년을 맞은 김씨는 2013년 대하소설 '객주'(전 10권) 완간 이후 처음으로 신작 장편을 냈다. 초기작부터 다뤄온 떠돌이 하층민의 삶을 이번에도 그려냈다. 노숙자 노인이 "세상에 널려 있는 여러 곳이 내가 잠잔 곳이라오"라며 풍찬노숙의 삶을 회상하면서 우리 사회에 뜻밖에 많이 존재하는 하층민의 세계를 그린 소설이다. 김씨는 "고난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고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밝혔다.

김주영 문학은 구수한 입담을 바탕으로 비어와 속어를 질펀하게 구사해 왔다. 그러나 이번엔 점잖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김씨는 "손주들이 '이런 할아버지를 두고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할까 봐 이번엔 상소리를 쓰지 않았으니 독자들이 양해해주기 바란다"며 웃었다. 그는 "내 연배에 신작 장편을 내는 소설가는 드물 것"이라며 "이번 소설은 세 차례나 고쳐 쓰면서 200자 원고지 300장을 덜어내고도 1000장 분량"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김씨는 수면 장애 때문에 새벽에 깨 TV 영화를 자주 본다고 했다. 그는 "옛날 007 영화의 주연 배우가 나이가 들어서도 어젯밤 액션 영화에 나와 여전히 총질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는데, 툇마루에 앉아 해바라기나 할 나이에 아직도 글을 쓰는 나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했다"며 "흘러가버린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외국 속담이 있지만, 그래도 독자가 내 소설을 읽고 위로를 받는다면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는 게 내 문학의 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껏 나만큼 원고료를 많이 받은 작가도 드물겠지만, 술 마시고 여행 다니느라 다 탕진했다"며 "늑대를 따라다니면 늑대 울음소리를 낼 수 있다는 속담을 믿고 문인들을 따라다니길 즐겼고, 그들과 어울려 보낸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장담하건대 이번 소설은 내가 쓴 소설 중에서 최고로 재미있다"며 "1만부만 팔리면 다음 소설을 또 쓸 것"이라고 우스개를 던졌다. 그는 소식(小食)을 건강 비결로 꼽으며 "하루에 밥은 반 공기만 먹는 대신 구기자 가루를 즐겨 먹으니까 밥맛이 없어지고, 적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다"며 "젊어선 소설을 안 쓸 때 돈이라든지 여자라든지 신경 써야 할 게 많았지만, 이젠 소설 외엔 고민할 일이 없으니 창작하는 데 힘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