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생사 갈라놓은 타워크레인

2일 오후 경남 거제시의 거제백병원 장례식장. 지난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발생한 크레인 붕괴 사고로 숨진 6명 중 4명의 시신이 안치된 이곳엔 유족들의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전기 배선 작업을 하다 숨진 박성우(44)씨는 일식 요리사 자격증을 따 횟집을 운영했다가 실패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대학원을 나와 학원 강사, 택배 등의 일을 하던 두 살 터울 형에게도 조선소 일을 권했다고 한다. 형제는 지난 1년간 거제뿐 아니라 울산·군산 등 일감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특근과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1일 사고 현장에서도 같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사 관련 도면을 보고 있던 동생은 크레인에 깔렸다. 옆구리에 찰과상을 입은 형은 119에 구조 요청을 했고, 병원에 갈 때까지 허리에서 피를 쏟는 동생의 손을 잡고 "정신 잡아야 산다"고 외쳤다. 동생은 병원에서 수술을 했지만 결국 과다 출혈로 숨지고 말았다. 형은 "내가 데리고 왔는데, 왜 죽었어?"라는 말만 되뇌었다. 숨진 박씨는 아내와 2남 1녀를 두고 있다.

◇크레인 운전수, 신호수 소통 안 된 듯

이번 사고도 근로자들이 작업 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건 당일 골리앗크레인은 운전수 2명, 신호수 6명이 운행했다. 모두 삼성중공업 소속 인력이었다. 타워크레인은 운전수 1명, 신호수 3명으로 이뤄졌으며 모두 협력업체 근로자였다. 신호수는 무전기 등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크레인 운전수에게 알려주고, 이동 방향에 장애물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당시 90m 높이의 골리앗크레인은 레일을 따라 남쪽에서 북쪽으로 움직였다. 타워크레인은 골리앗크레인의 주행 범위 안에 있었다. 운전수와 신호수 간에 정상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졌다면 타워크레인 기사는 '＼' 모양으로 작업 중이던 수평대를 'ㅡ' 형태로 내려 총높이를 95m에서 60m로 낮췄어야 했다. 하지만 타워크레인은 건조 중인 해양 플랜트 상부에 구조물을 올려놓는 작업을 계속했다. 이 바람에 이동하던 골리앗크레인에 타워크레인을 지지하는 와이어가 걸리면서 참사로 이어졌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매뉴얼상 두 크레인은 동시에 움직일 수 있다. 다만 상호 신호를 해서 타워크레인이 수평대를 아래로 내려 골리앗크레인이 지나가도록 해야 한다"며 "현재로선 신호수와 운전수 간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근로자, 열악한 작업에 집중

숨진 6명을 포함해 31명의 사상자는 모두 삼성중공업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조선업은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일감은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조선사들은 고용 인원을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인력의 상당 부분은 협력업체를 통해 충당한다. 삼성중공업도 생산직만 따지면 직접 고용 인력은 약 5000명이고, 협력업체 인력은 약 2만5000명이다.

문제는 조선사가 협력업체 인력을 상대적으로 작업 환경이 열악하고 '힘든 일'에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협력업체 직원의 임금은 직영의 60~70% 수준에 머무는 실정이다.

그동안 일어난 조선소 사고의 희생자 역시 대부분 협력업체 직원에게 집중됐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 9월까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에서 산업 재해로 사망한 37명 가운데 협력업체 직원이 29명(78%)이었다. 한 조선사 협력업체 김모 대표는 "원청 업체가 요구하는 공기(工期)를 맞추려다 보니 안전보다 작업 속도와 효율을 먼저 따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선박 건조 전체 작업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언제 다시 작업을 재개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