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와 용서의 갈림길… 부부의 결말은

11일 개봉하는 이란 영화 '세일즈맨'(감독 아스가르 파라디)은 개봉 이전부터 외신을 통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지난 2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파라디는 2012년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에 이어 이 영화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두 차례 받았다. 페데리코 펠리니(이탈리아·4차례 수상)와 잉마르 베리만(스웨덴·3차례)을 바짝 뒤쫓는 감독이 된 것이다.

영화 '세일즈맨'에서 이란의 문학 교사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와 아내 '라나'(타라네 알리두스티)는 연극을 함께 공연하는 배우이다. 새롭게 이사 간 집에서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라나는 괴한(怪漢)을 남편으로 착각해서 문을 열어줬다가 폭행당해서 정신을 잃는다. 머리와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라나는 경찰 신고마저 거부한 채 두려움에 떤다. 남편은 지하 주차장에서 괴한이 몰고 온 픽업트럭을 발견하고 홀로 범인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초반부터 잦은 장면 전환 없이 한 번 촬영할 때마다 길게 호흡을 가져가는 '롱테이크(long-take)'와 들고 찍는 '핸드헬드 카메라(handheld camera)' 기법으로 작가주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특히 흥미로운 건, 주인공 부부가 연극 공연을 하는 장면을 '극중극(劇中劇)' 형식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부가 공연하는 작품은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1915~2005)의 1949년 퓰리처상 수상작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남편 에마드가 연극에서 맡은 배역이 세일즈맨 '윌리 로먼'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다가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은 뒤 파국을 맞는 연극 주인공처럼, 남편 에마드 역시 아내의 사고 이후 예상치 못했던 변화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당혹스러워한다.

이란 영화에서 미국 극작가의 희곡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미국과 이란은 2015년 핵 협상 타결 이후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양국 사이의 긴장감은 여전히 높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을 포함해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비자 발급과 입국을 금지하는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파라디 감독은 이에 항의하며 아카데미 시상식 불참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당시 성명에서 "미국과 '우리의 적들'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으로 세상을 구분하면 두려움을 낳게 된다"면서 "종교와 문화, 국적은 서로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세계 시민"이라고 말했다.

미스터리 추적극의 외양을 지닌 영화 역시 결말로 향할수록 복수와 용서, 선악(善惡) 같은 철학적 주제에 대한 진지한 탐구로 변모한다. 복수와 용서라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주인공 부부는 예상치 못했던 결말 앞에서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한다. 다음 날 연극 공연을 앞두고 분장실에서도 이 부부는 침묵 속에서 물끄러미 상대를 응시할 뿐이다. 이 부부는 서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 연극도, 영화도 해답을 일러주지 않은 채 암전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