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배달, 콘서트 예매도… 영철이에게 맡겨주세요"

개그맨 김영철(43)은 그간 마르고 닳도록 써먹어 온 하춘화·김희애 성대모사를 요즘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무척 바쁘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물론 트로트 가요 '따르릉'도 발표했고, SBS 라디오 '김영철의 파워FM'은 전체 청취율 5위로 올라섰다.

"시청자들이 저를 알아가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린 것뿐이죠. I'm so, so happy(정말 정말 행복해요)!" 1일 서울 한남동에서 만난 김영철은 이따금 영어를 섞어가며 말했다. 손에 든 에코백을 보여주면서 "요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환경을 보호하려고 이런 걸 멘대요"라고도 했다. 그런 '허세'가 밉지 않아 보였다. 할리우드 진출이란 꿈을 향해 꾸준히 달려가는 과정을 오랜 세월에 걸쳐 그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김영철은 '비(非)호감' 연예인의 대명사처럼 통했다. "몸짓이 과하고,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하고, 절제를 안 해서"라고 그는 스스로 원인을 분석했다. 주목받아 보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역효과를 냈다.

'비호감' 딱지를 뗀 것은 2015년 예능 '진짜 사나이'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면서부터. 평상시 모습이 공개되면서 그가 방송에서뿐 아니라 항상 의욕에 넘친다는 걸 시청자들이 알게 됐다. 구박당하고 놀림받는 모습이 친근해졌다. 그해 MBC 연예대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그는 청소년, 대학생, 직장인 대상으로 강연을 다닌다. 주로 '청춘'이나 '도전'을 주제로 삼았지만 요즘은 '비호감·악플 극복법'도 추가됐다. 예능에선 '개그맨인데 왜 이렇게 재미가 없냐'며 구박받는 캐릭터로 인기를 끈다. "힘들었던 시간 덕분에 남들 시선보다 내 생각이 인생에 훨씬 중요하다는 통찰을 얻었죠. 안 웃기려 할 때부터 비로소 웃길 수 있다는 진리도 깨닫게 됐고요."

김영철은 2003년 캐나다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에 구경 갔다가 미국 진출이란 꿈을 품게 됐다. 이후 영어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다. 학원 다니고 전화 영어 수강한 것이 전부지만, 하루하루 꾸준히 쌓아 라디오 영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영어 교재를 내고, 대학 초급 영어 강사로 강단에 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지난해 드디어 기회를 얻었다. 호주 멜버른 코미디 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6분간 영어로 개그를 선보였다. "이 무대에 서려고 10년 넘게 영어를 공부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국내 방송에도 소개돼 화제가 됐다. 기회만 닿으면 미국 시트콤·할리우드 배역 오디션을 본다. "세탁소 주인도, 식당 직원 역할도 좋아요. 난 진짜 웃기게 주문받을 수 있거든요. 다들 힘들 거라고 말리지만 40대 중반에 미국 무대 도전, 너무 괜찮은 선택 아닌가요?" 여전히 영자 신문과 영어 전자책을 끼고 살고 매일 전화 영어를 수강한다. "안 되면 어때요. Don't worry(걱정 마). 모멸감도, 실패도 즐기는 거죠. 난 스무 살처럼 해볼 거예요."

김영철은 4일 밤 11시 처음 방송하는 TV조선 예능 '배달 왔습니다'에서 이경규, 윤정수, 이특과 함께 진행을 맡는다. 평범한 이웃들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해결해주는 내용이다. 아이돌 콘서트 티켓도 구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꽃 배달도 해준다. 만약 김영철이 의뢰인이 된다면? "신부를 구해달라고 해야죠. 상냥하고 웃음 코드 잘 맞는 여성으로. 개그는 설명하기 시작하면 재미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