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 붕괴·총독부 철거… 1995년 배경 8人 소설집

1995

김형주 외 지음｜강｜248쪽｜1만4000원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저는 불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열여섯, 그해 여름에 일어났던 불 말이에요." 1995년 8월,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 교화를 명목으로 갇힌 불량소녀들이 기숙사에서 탈출을 모의한다. 휴지·이불 등을 쌓은 뒤 그 위에 베이비오일을 뿌리고 불을 붙인다. 혼란을 틈타 밖으로 나가려던 계획은 그러나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리고 소설가 양진채는 단편 '베이비오일'에 이렇게 썼다. "무엇보다 우린 불을 몰랐어요." 아수라를 배경으로 TV에선 그해 삐삐밴드가 발표한 노래 '안녕하세요'가 흘러나온다.

김형주·정태언·조현 등 데뷔 10년 차에 들어선 소설가 8인의 테마소설집. 1995년을 배경으로 쓴 신작 모음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전두환·노태우 전(前) 대통령 구속 수감, 전국동시지방선거 등 유독 역사의 살갗에 큰 충격을 안긴 불길이 많았다. "1995년은 오롯이 1995년이면서 다른 모든 해이기도 했다"는 저자의 목소리처럼, 향후의 안녕에 닿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시절이 있다. 그것은 오늘을 의미하기도 한다.

"구이의 시대가 오고 있어."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인공지능 시대에서 보자면 코웃음 나는 유물이지만, 소설가 진보경은 '구이의 시대'에서 도스(DOS) 시대를 몰아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95' 발매와 삼풍백화점 붕괴와 부동산 실명제 시행을 통해 얘기하는 것이다. "새로운 걸 세우려면 옛것은 무너뜨려야 한다. 맹탕으로 살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