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털없는 원숭이'의 엉덩이와 궁둥이 차이

우편으로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출판사 사정으로 15년 넘게 절판됐던 책의 복간. 데스먼드 모리스(89)의 '바디워칭'(이규범 옮김·범양사刊)입니다. 베스트셀러 '털없는 원숭이'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원로 동물행동학자의 인체 탐구여행(Body Watching). 같은 과학자의 '피플와칭' '애니멀와칭' '베이비와칭' 등 와칭 시리즈의 하나죠. 1985년 초판이지만, 낡지 않았더군요. 오히려 신선한 쾌감을 줬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문학으로 단련된 과학자의 글쓰기가 오히려 매혹적인 데다, 스크롤과 더블클릭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디지털의 목마름을 이 종이책이 어느 정도 해갈시켜 주기 때문일 겁니다. A4 크기의 큼직한 판형과 주제별 컬러 사진 편집이 시원시원하더군요.

오늘 Books 커버스토리를 '인포메이션 북'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순 정보만으로는 인터넷과의 경쟁이 버거운 게 지금 종이 책의 현실 아닙니까. 디지털을 압도하는 비주얼과 공짜로는 얻을 수 없는 매혹적 문장만이, 어쩌면 몇 안 되는 돌파구겠죠.

전술했듯이, '바디워칭'은 인체 탐구여행입니다.

머리카락에서 출발해, 이마·눈·코·귀·뺨·입·수염·목을 거쳐, 어깨·팔·손·가슴·등·배를 지나고, 엉덩이·궁둥이·성기에 주목한 뒤, 다리·발로 내려갑니다. 모두 20곳에서 머물죠. 엉덩이와 궁둥이를 구분한 게 특이합니다. 데스먼드 모리스는 해부학적 기관과 성적 기관으로 나눴군요. 몸통과 다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신체를 떡하니 벌어지게 하는, 신체 윤곽상의 돌출부가 엉덩이(hip). 그리고 능멸과 음란의 상징이 궁둥이(buttocks). 궁둥이를 보여주는 것은 적에게 배설물을 끼얹겠다는 모욕의 상징이고, 엎드린 궁둥이는 필연적으로 성기가 노출되면서 저속한 음란행위가 된다는 거죠. 1920년대생인 모리스 동물행동학의 시야는 이렇듯 적나라한 매력이 있습니다.

엉덩이 hip은 폴짝 뛰다는 뜻의 동사 hop에서 왔다는군요. 음란하다기보다는 발랄한 느낌이랄까요. 한국어로는 궁둥이가 더 생기 있다고 느낄 분도 상당수일 듯싶네요. 이번 주 Books에서 '인포메이션북'의 쾌감을 만끽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