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폭주하는 것 같지? 다 계산하고 움직인 거야

우주를 떠돌며 훔친 물건을 파는 좀도둑 '피터'(크리스 프렛), 우주 최강 악당의 딸이자 냉혹한 암살자 '가모라'(조 샐다나).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덩치 '드랙스'(데이브 바티스타)와 뛰어난 전사이지만 성격 파탄자인 너구리 종족 '라켓'(브래들리 쿠퍼), 그리고 '나는 그루트다'(I'm Grut)라는 말만 반복하는 나무 종족 아기 '그루트'…. 현실이라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을 기피 대상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와 거친 농담을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치고받고 쏘고 싸우고, 좌충우돌하다 끝내 우주를 구한다.

2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감독 스티브 건)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마블의 수퍼 영웅물 중에서도 가장 만화적인 영화다. 전편(2014년)보다 볼거리와 액션은 더 화려해졌고, 이야기의 규모도 은하계 수준으로 커졌다고 자랑한다. 앞선 성공적 장르 영화들의 주제와 소재를 흡수하며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영화로 입지를 굳히려는 시도다. 장삿속이 뻔히 보이지만, 굳이 그걸 숨기지 않으니 오히려 묘하게 매력적이다.

영화는 언뜻 고장 난 놀이기구처럼 산만하게 폭주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뜯어보면 폭주보다는 코스 계산 다 끝내 놓고 달리는 영리한 질주 쪽에 가깝다. 가디언들의 리더 격인 '피터'는 엄마를 잃은 지구 출신 남자. 아버지가 누군지 몰랐던 그의 앞에, 수백만 년 전부터 홀로 살아온 신적(神的) 존재 '에고'(커트 러셀)가 나타난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악당이라니? "내가 네 아버지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스타워즈 시리즈 속 다스 베이더 대사의 변형이다.

이 영화는 또 개성 강한 친구들이 서로 의지하며 자신들을 '가족'이라 부른다는 점에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 같은 영화들의 '유사 가족' 콘셉트도 녹여 넣는다. 익숙한 올드 팝을 적절히 삽입해 뮤직비디오처럼 리듬감 있게 편집하는 스타일, 인기 TV 시리즈 '전격 Z작전'의 데이비드 핫셀호프나 왕년의 '람보' 실베스터 스탤론 등 70~80년대 미국 대중문화 코드를 차용하는 방식은 전편부터 이 시리즈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 덕분에 생경한 캐릭터들이 잇따라 등장하는데도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좌충우돌 아웃사이더였던 과거는 다 잊은 건지, 가디언들은 '우주판 어벤저스'처럼 강력해졌다. 개성을 내주는 대신 장르의 매력을 취하며 평균적 블록버스터로 최적화된 모양새다. 전편처럼 신선한 히어로물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웃고 즐기기엔 훨씬 부담 없다. 그런 날이 있다. 정신없이 재미있게 놀았는데, 조금 지나서 돌이켜 보면 뭘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 이 영화가 딱 그렇다.

상영시간은 136분으로 전편(122분)에 비해 14분 늘었다. 많이 길어진 느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동안 캐릭터 뒷이야기나 후속편의 힌트를 담은 영상이 5편 나온다.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