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천사' 김해림, 행운의 87m 샷이글

김해림(28)은 17번홀(파4)에서 87m 거리 두 번째 샷을 남겨 놓고 있었다. 바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불고 있었다. 홀 오른쪽을 겨냥해서 48도 웨지로 친 공이 홀 오른쪽 1.5m에 떨어지더니 스핀을 먹고 몇 번 튀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샷 이글로 단숨에 2타를 줄인 것이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그런가. 행운이 따르네." 2007년 프로 데뷔 후 꾸준히 기부와 자선 활동을 해온 그에게는 '기부 천사'란 별명이 붙어 있다. 그는 지난해 이 대회에서도 마지막 날 샷 이글(5번홀)을 터뜨리며 감격의 프로 첫 승을 올렸다.

7일 충북 충주시 동촌 골프클럽(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교촌 허니 레이디스오픈(총상금 5억원) 최종 3라운드.

김해림이 3홀을 남기고 1언더파를 기록하고 있을 때 먼저 경기를 마친 정슬기는 3언더파 단독 선두였다. 역전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16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은 김해림은 17번홀(파4) 이글로 단숨에 승부를 뒤집었다. 김해림은 이날 이글 1개, 버디 2개, 보기 4개로 타수를 줄이지 못했지만 최종 합계 4언더파 212타로 2위 정슬기를 1타 차로 따돌렸다. KLPGA 투어 7개 대회가 마무리된 가운데 김해림이 유일하게 2승을 올렸다. 상금 랭킹도 1위(2억9298만원)다.

김해림은 지난해 이 대회에서 1부 투어 130개 대회 만에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상금 1억원 전액을 기부했다. 이 우승을 계기로 김해림은 정상급 선수로 거듭났다. "예전엔 마지막 날 뒤집히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한 번 우승하니까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메이저 대회인 KB금융 스타챔피언십 정상에 올랐고, 올해 3월에는 중국에서 열린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당시 중국 중계방송사가 '사드 보복'을 하듯 롯데 로고가 있는 모자를 쓰고 경기하는 그의 얼굴을 비추지 않아 '얼굴 없는 챔피언'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2007년 프로가 된 뒤 상금의 10%를 기부해왔다. 처음 상금 63만6000원을 받고 6만원을 기부한 게 시작이었다. 김해림은 당시 "살다 보면 사기도 당하고 뜯기는 돈도 많을 텐데 그때 가서 아깝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웃과 함께 나누면 복이 온다"고 하던 아버지 이야기를 마음에 새겼다고 했다.

2013년에는 KLPGA 멤버로는 처음으로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가입했다. 이번 대회 2라운드에는 전주 시온 육아원 어린이 30여 명을 초청했다. 김해림은 "기부금 10억원을 돌파한다는 목표를 향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