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며 '찌질남'에서 '개념남' 됐죠

영화 '가족의 탄생'의 애정결핍남(男).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바람둥이. 영화 속 배역에 불과했지만 대중은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개성 있게(?)' 생겼네. 성격 참 '찌질'하네. 배우 봉태규(36)다.

그가 에세이집 '개별적 자아'(안나푸르나 刊)를 펴냈다. 책표지 앞날개에 달린 자기소개 문구는 달랑 한 줄이다. '생각보다 글을 꽤 잘 쓰는 사람.' "제가 저 소개하는 데 괜히 겸손할 필요 없잖아요. 그래도 앞에 생각보다를 넣었어요. 굉장히 예의 바른 소개 아닌가요." 지난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 봉태규는 오히려 뻔뻔했다.

말로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글은 정반대. 차분하고 섬세했다. 그건 글쓰기가 궁지에 몰렸던 그가 세상으로 걸어나오게 해준 일종의 '치유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한창때'의 저따위는 흔적 없이 잊고 싶었어요. 문득 글이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동안 독서라고는 시나리오와 대본이 전부였는데…."

그는 2009년 소속사와 출연료 문제로 법정 다툼을 시작했다. 2010년에는 아버지가 별세했고, 고질적인 디스크로 몸도 아팠다. 슬럼프라면 슬럼프였던 시기, 그는 글을 썼다. 뭐든 써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단다. 키보드가 어색할 정도로 '쓰기'와는 담을 쌓았던 인생, 그는 키보드가 아니라, 태블릿PC(아이패드)를 사용했다. 책도 읽기 시작했다. 옥석을 가릴 눈은 애초에 없으니 서점에서 잡히는 대로 책을 집어들었다. 소설가 김승옥 작품은 거의 다 사서 읽었고,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가 특히 기억난다고 했다.

책은 대중의 시선을 피해 '혼자 놀기'를 즐기는 봉태규의 관찰자적 시선을 보여준다. "목욕하는 남자들의 몸을 보면 그들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가 보인다." 마른 몸에 배는 불룩하고 양팔에 근육이 있는 사람은 무거운 물건을 드는 노동자, 왼쪽 어깨가 올라가 있고 목이 일자형인 사람은 사무직. 이런 식이다. "21세기에 바람직한 근육질의 몸 따위가 존재할 리 없는데도 사람들은 저마다 이상적인 신체를 설정해놓고 근육을 만든다. 확실히 모두 근육질일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로." '개별적 자아'라는 책 제목이 이 대목에서 나왔다.

그의 글은 어미가 수시로 변한다. '~해요'에서 '~습니다'가 되고 때로는 존댓말과 반말이 뒤섞인다. "한 가지 어미만 쓰면 글이 차갑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른 한국 에세이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마치 객관적인 이야기처럼 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에세이를 쓰면서 '이 말은 제가 하는 이야기예요'라고 전달하고 싶었죠."

그는 자신의 글쓰기를 '환기' 작업에 비유했다. 청소할 때 환기가 필요하듯 스스로의 삶에 새 공기가 필요했다는 뜻. "20대에는 늘 분노해 있었어요. 너무 빨리 유명해져서 그랬는지 화도 자주 냈죠. 저랑 같이 일했던 PD에게 제 평판을 들은 장모님이 이 결혼 막아야 하나 고민하셨을 정도로요." 그는 글을 쓰면서 변했고 지금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집 살림을 살뜰히 챙기는 '개념남'으로 불린다.

봉태규는 최근 연극 '보도지침' 주연으로 대학로 무대에 다시 섰다. 그가 말했다. "연기도 글도 봉태규라는 사람에 가깝게 표현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는 앞으로도 소설이든 에세이든 글을 계속 쓰겠다며, 요즘 노트북 키보드 치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의 윗입술이 올라가 잇몸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