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에 돼지 코 수육… 소름 확 돋는 도전적 요리"
입력 : 2017.05.10 03:01
['일본의 맛' 쓴 英작가 마이클 부스작가 성석제와 '맛' 토론]
이번엔 韓中日 요리·문화 비교… 한국 찾아 서민식당 등 취재
"'영미권, 동아시아 비슷하다' 착각… 세 나라간 愛憎·차이 보여줄 것"
4000원짜리 돼지국밥과 7000원짜리 평양 냉면 등 서민 음식으로 이름난 서울 탑골공원 앞 유진식당. '미각 탐험'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와 한국 작가가 9일 낮 이곳에서 만났다. '오로지 일본의 맛'(글항아리刊)의 마이클 부스(45)와 음식 에세이 '칼과 황홀'(문학동네刊)의 성석제(57)다. 일본에서만 20만부 가까이 나간 '오로지 일본의 맛' 덕에 '일본인보다 일본 음식에 대해 더 잘 아는 이상한 외국인'으로 불리는 이 작가의 다음 프로젝트는 한·중·일 음식과 문화 비교. 한 발자국 더 들어가면, 영미권 독자들에게는 다 비슷하다고 오해받는 동아시아 3국 제대로 비교하기다. 작가 성석제는 그의 취재원인 셈. 한국 작가가 이 집을 고른 이유를 소개한다. "지나간 시간의 삶을 담고 있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식당입니다. 냉면은 원래 귀한 음식인데, 여기서는 서민의 값에 내놓죠."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영국 작가가 스마트폰 녹음 앱을 여는 와중에, 한국 작가는 메뉴에 나와있지 않은 '돼지 코 수육'을 주문했다. 부위를 들은 영국 작가의 눈동자와 콧구멍이 커진다. 첫 경험이란다. 중국에서라면 몰라도, 한국에서 돼지 코를 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 '돼지 코 슬라이스' 한 점에 새우젓을 얹으며, 한국 작가가 인문학적 설명을 덧붙인다.
"돼지 후각은 포유류 중에서도 빼어나죠. 후각 수용체 유전자가 개보다도 많습니다. 게다가 돼지 후각은 짝짓기에도 결정적이라잖아요. 서로 코를 비벼대는 돼지를 보세요. 대단히 발전한 기관입니다. 연골, 단백질에 근육까지. 부드러우면서 끈기있고, 고소한 맛이죠."
같은 방식으로 한 점 시도한 영국 작가가 엄지손가락을 들지만, 뭔가 흔쾌하지는 않은 듯. 소심한 반박이 이어진다. "일본 요리의 가장 큰 특징은 맛보다 시각적 효과에 있는 것 같습니다. '눈으로 먹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돼지 코 수육은 정말 도전적인 요리군요. 소름이 확 돋는데요(웃음)."
'돼지 코 수육'은 조금 극단적인 사례겠지만, 둘의 대화는 곧 서로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나라 간 음식 교류로 확장됐다. 부스는 요코하마와 나가사키의 예를 들었다. 원래 중국에서 시작한 라면이 전후 밀 수출을 늘리려는 미국의 의도와 만난 곳이 요코하마였다는 것. 또 400년 전통의 나가사키 정식 요리에는 미국·중국·네덜란드·일본의 요리 전통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사례를 찾을 수 있냐고 영국 작가가 물었다. 성석제는 인천을 꼭 한번 찾아가보라고 추천했다.
"한국과 중국이 근대에 음식으로 만났던 현장이 인천입니다. 짜장면은 한국과 중국의 만남이고, 짬뽕은 한·중·일의 만남이죠. 지금은 한국인에게 대중화된 요리가 됐지만."
이날 대화의 중심은 요리였지만, 마이클 부스의 욕심은 조금 더 크고 깊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그의 전작(前作) 제목은 '거의 완벽한 사람들(Almost Nearly Perfect People)', 부제는 '스칸디나비아 유토피아 신화의 이면'이다. 북유럽을 천국이라 착각하는 영미권 사람들을 '교정'하겠다는 도발적 취지였는데, 15개 언어 20국에서 번역 출판되는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고 했다. 부스의 아내는 덴마크인. 덴마크·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국을 뭉뚱그려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의 시각 교정은 이 책이 거둔 또 하나의 성과였다.
'거의 완벽한 사람들'의 시도를 한·중·일 3국에 적용해 보겠다는 게 이 영국 작가의 야심이다. 영미권 대중 독자들을 위한 이런 종류의 책은 찾기 힘들더라는 것.
마침 이날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부스는 자신의 한국 취재 일정을 꼭 이날 주변으로 하고 싶었다고 했다. 폭력과 혁명이 아니라, 이성과 민주주의로 탄핵과 선거를 치르는 대한민국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는 것. 그러고는 익살맞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 일본 친구들을 도발했어요. 너희도 한국처럼 문제 많은 아베 정부를 탄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자 그 나라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한국은 5년마다 대통령을 탄핵한다고. 한국인들은 너무 감정적이라고요."
그 '도발'에 한국 작가가 조용히 대답했다.
"일본은 500년 동안 무(武)로 지배한 막부정치였죠. 막부는 국민을 주인이 아니라, 단순히 다스리는 대상으로 여겼어요. 만약 한국에서처럼 백성들이 들고 일어섰다면, 일본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일본 관(官) 주도 문화와 한국 민본주의의 차이라고 할까요."
부스가 스마트폰 녹음 앱이 잘 작동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더니, 돼지 코 수육 한 점을 말없이 집었다.
같은 방식으로 한 점 시도한 영국 작가가 엄지손가락을 들지만, 뭔가 흔쾌하지는 않은 듯. 소심한 반박이 이어진다. "일본 요리의 가장 큰 특징은 맛보다 시각적 효과에 있는 것 같습니다. '눈으로 먹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돼지 코 수육은 정말 도전적인 요리군요. 소름이 확 돋는데요(웃음)."
'돼지 코 수육'은 조금 극단적인 사례겠지만, 둘의 대화는 곧 서로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나라 간 음식 교류로 확장됐다. 부스는 요코하마와 나가사키의 예를 들었다. 원래 중국에서 시작한 라면이 전후 밀 수출을 늘리려는 미국의 의도와 만난 곳이 요코하마였다는 것. 또 400년 전통의 나가사키 정식 요리에는 미국·중국·네덜란드·일본의 요리 전통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사례를 찾을 수 있냐고 영국 작가가 물었다. 성석제는 인천을 꼭 한번 찾아가보라고 추천했다.
"한국과 중국이 근대에 음식으로 만났던 현장이 인천입니다. 짜장면은 한국과 중국의 만남이고, 짬뽕은 한·중·일의 만남이죠. 지금은 한국인에게 대중화된 요리가 됐지만."
이날 대화의 중심은 요리였지만, 마이클 부스의 욕심은 조금 더 크고 깊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그의 전작(前作) 제목은 '거의 완벽한 사람들(Almost Nearly Perfect People)', 부제는 '스칸디나비아 유토피아 신화의 이면'이다. 북유럽을 천국이라 착각하는 영미권 사람들을 '교정'하겠다는 도발적 취지였는데, 15개 언어 20국에서 번역 출판되는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고 했다. 부스의 아내는 덴마크인. 덴마크·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국을 뭉뚱그려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의 시각 교정은 이 책이 거둔 또 하나의 성과였다.
'거의 완벽한 사람들'의 시도를 한·중·일 3국에 적용해 보겠다는 게 이 영국 작가의 야심이다. 영미권 대중 독자들을 위한 이런 종류의 책은 찾기 힘들더라는 것.
마침 이날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부스는 자신의 한국 취재 일정을 꼭 이날 주변으로 하고 싶었다고 했다. 폭력과 혁명이 아니라, 이성과 민주주의로 탄핵과 선거를 치르는 대한민국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는 것. 그러고는 익살맞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 일본 친구들을 도발했어요. 너희도 한국처럼 문제 많은 아베 정부를 탄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러자 그 나라 친구들이 그러더군요. 한국은 5년마다 대통령을 탄핵한다고. 한국인들은 너무 감정적이라고요."
그 '도발'에 한국 작가가 조용히 대답했다.
"일본은 500년 동안 무(武)로 지배한 막부정치였죠. 막부는 국민을 주인이 아니라, 단순히 다스리는 대상으로 여겼어요. 만약 한국에서처럼 백성들이 들고 일어섰다면, 일본 백성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일본 관(官) 주도 문화와 한국 민본주의의 차이라고 할까요."
부스가 스마트폰 녹음 앱이 잘 작동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더니, 돼지 코 수육 한 점을 말없이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