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국민 만화가'의 요괴 그림, 사찰 천장에 가득

2015년 타계한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는 '삼대(三代) 화백'으로 불리는 일본 만화가다. 1967년 연재를 시작해 숨 거둘 때까지 집필한 '게게게의 기타로' 때문이다. 주인공 기타로가 인간을 괴롭히는 악한 요괴를 물리친다는 내용의 이 만화는 50년간 출판·영상 만화로 제작돼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열광하는 '국민 만화'가 됐다. 그는 2007년 세계 최대 출판만화축제인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코믹상'을 수상했고, 2011년엔 동일본 대지진을 담아낸 작화가 뉴욕타임스에 실리기도 했다.

작가 고향인 돗토리현 북서부 작은 마을 사카이미나토(境港)는 2009년 '미즈키 시게루 거리'를 조성하면서 '오타쿠의 성지(聖地)'로 거듭났다. JR선 사카이미나토역 플랫폼을 나와 800m에 달하는 거리를 요괴상(象) 153개로 꾸몄다. 온 가족이 어릴 적 추억을 공유하는 관광 명소로 꼽히면서 1만명 남짓했던 관광객이 8년 새 100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거리를 찾는 관광객이 빼먹지 않고 들르는 산사(山寺)가 있다. 시게루의 요괴 그림으로 천장을 장식한 다이센(大山)의 '엔류인(圓流院)'이다. 평지는 벚꽃 흩날리는 봄인데 다이센 산봉우리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엔류인도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절을 관리하는 스님은 "겨우내 내려 미처 녹아내리지 못한 이 눈은 5월 초쯤 부서진다"고 했다.

400년 전 에도 시대 초기에 세워진 절은 '작은 미술관'이다. 벽면에 걸린 그림 10여 점은 155년 전 세상을 뜬 당시 주지 스님 도젠( 然)의 작품들. 서양화가이기도 했던 도젠의 그림은 "빛이 곧 색채"라고 했던 모네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그림은 절기마다 바뀐다. 봄이면 봄 풍경, 여름이면 여름 풍경을 담은 그림을 걸어 산사 안팎 세상을 하나로 이어준다.

백미(白眉)는 천장화다. 방석을 접어 베개 모양으로 만든 스님은 "여기 누워보시라"고 했다. 차가운 나무 바닥에 몸을 누이니 '요괴 그림'이 시선을 압도했다. 기괴한 형상의 요괴 110마리가 금방이라도 얼굴로 쏟아져 내릴 듯 천장 가득 그려져 있다. 이 천장화는 미즈키 시게루가 2009년 절의 개·보수 당시 기증한 것. 총 110장의 그림 중 '아미타 정토' '보타락 정토' 2장을 제외한 108점이 동양 설화에 등장하는 요괴들이다. 일본에서는 요괴를 '사람을 도와주려 신(神)이나 부처가 본래 모습을 숨기고 변신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40여 년간 그렸던 수천 장의 요괴 중 본래 모습이 신과 부처였던 것만 골라 엔류인에 건넸다.

미즈키 시게루는 어릴 적부터 창문 너머로 다이센을 바라보며 승려가 되기를 꿈꿨다. 하지만 태평양전쟁 당시 폭격으로 왼팔을 잃은 후 '생계형 만화가'의 길을 걷는다. '게게게의 기타로'가 인기를 끌면서 '요괴 만화의 거장'으로 거듭난 그는 반전(反戰) 활동가로도 명성을 쌓는다.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그림을 건네어 다이센 산사에 몸담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