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하자니 법에 걸리고, 안 하자니 마음에 걸린다

지난 9일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28)씨는 학부모로부터 휴대전화로 2만원짜리 기프티콘(모바일 쿠폰)을 받았다. 이씨는 즉시 '거절하기' 버튼을 눌러 선물을 돌려보냈다. 그러자 학부모는 '5만원 이하면 괜찮다'는 메시지와 함께 또다시 기프티콘을 보내왔다.

강남구의 중학교 교사 김모(27)씨도 스승의날(15일)을 앞두고 5000원짜리 커피 모바일 쿠폰을 5개 받았다. 김씨는 "소액인 데다 주변 사람 모르게 성의 표시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학부모들이 모바일 쿠폰을 보낸다"며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보내는 통에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원래 휴대전화로 받은 기프티콘을 보낸 사람에게 돌려주려면 모바일 메신저 회사에 전화를 걸어 환불해야 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후 사람의 눈을 피해 기프티콘을 선물하려는 사람과 이를 거절하려는 사람 간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가 잇따르면서, 모바일 메신저 회사들은 '거절하기' 버튼만 눌러 간단히 사절하는 기능을 최근 도입하기까지 했다.

서울 동작구의 한 사립 어린이집에 아들(3)을 보내는 김모(39)씨는 며칠 전 같은 반 아이 엄마들이 교사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아니냐"고 물었더니 "어린이집 교사는 예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부정청탁금지법은 공공기관·언론사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한다. 유치원은 공공기관으로 분류되지만, 어린이집은 해당하지 않는다. 김씨는 "똑같이 아이를 맡기는데 유치원 교사에겐 선물을 못 하고, 어린이집 교사에겐 해도 된다니 너무 헷갈린다"고 한숨을 쉬었다.

작년 9월 부정청탁금지법 시행 후 맞는 첫 스승의날이 다가오면서, 교사와 학부모들이 정확한 법 규정을 몰라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선 법 테두리 안에서 스승의날을 기념할 묘안을 짜내느라 고심하고 있다.

서울 B초등학교는 올해 학교 예산으로 전체 교사 수만큼 카네이션을 구입하기로 했다. 이 꽃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스승의날에 교사에게 달아주도록 하는 '셀프 축하'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이 학교 교사는 "학생들에게 스승의날 의미를 알려주고 싶기는 한데, '김영란법' 때문에 결국 학교 돈으로 꽃을 사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무학여고는 올해 스승의날에는 사생대회를 하고, 다음날에는 반별로 단체 사진을 찍어 가장 좋은 사진을 뽑는 '사진 콘테스트'를 열기로 했다. 이 학교 학생회장 이예진(3학년)양은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행사를 준비하니까 더 즐겁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선 '사은회(謝恩會)'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대 인문계열 한 학과는 매년 스승의날 즈음에 교수·학생이 함께 등산을 하고, 학생 1인당 2만원 정도를 모아 간소한 선물을 증정했다. 하지만 지난달 서울대 의대 교수 17명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것을 보고 올해는 행사 자체를 취소했다. 대신 커다란 종이에 학생들이 감사의 마음을 적어 전달하기로 했다. 서울대 대학원생 박모(27)씨는 "선물비를 반강제로 걷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지만, 사은회 자체가 사라져 교수님과 친해질 기회가 없어진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학교들도 '김영란법 위반 막기'에 나서고 있다. 서울대는 올해 각 학과에 '학생들이 돈을 모아 5만원 이하의 선물을 해도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안내문을 보냈다. 서울의 A초등학교도 '생화든 조화든 어떤 카네이션도 들고 오지 말라'는 안내문을 학부모들에게 발송했다.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선 선물 주고받는 문화가 사라지는 것이 긍정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사제의 정을 나누는 기회가 사라져 안타깝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병식 서울교대부설초등학교 교장은 "혹시 학생들이 교사에 대해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