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평(三視世評)] 1등 향한 멀고도 험한 길… '입시 지옥' 닮았네

피라미드 모양의 세계가 있다. 뾰족한 꼭짓점은 찬란하고 아찔하다. 거대한 삼각형 안에서 101명의 소년이 춤추고 노래하며 꼭대기를 향해 전력투구한다. 시즌2로 돌아온 Mnet 예능 '프로듀스 101'이다.

지난해 여자 아이돌 연습생 101명을 내세웠던 시즌1은 'Pick me'라는 곡으로 신드롬을 일으켰고, 11명으로 구성된 스타 걸그룹 '아이오아이'를 탄생시켰다. 이번에는 50여개 소속사 출신 남자 연습생 101명 중 11명을 뽑아 아이돌 그룹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소녀팬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화제의 프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인기 예능인 tvN '윤식당'도 넘어섰다.

단체로 교복을 맞춰 입은 10~20대 남자 연습생들은 유쾌하고 씩씩한 에너지, 애교와 패기가 넘친다. 아이돌을 꿈꾸는 각자의 절박한 사연에, 101명을 이리저리 그룹으로 묶을 때마다 새로운 스토리가 생겨난다. 시청자 누구나 매일 최대 11명까지 온라인 투표를 할 수 있으니, 아직 완벽하지 않은 연습생을 내 손으로 스타로 키우는 듯한 보람도 있다. "내가 투자한 회사 주식이 우량주 되어가는 뿌듯함, 게임 캐릭터 성장시키는 재미, 이것저것 골라 쇼핑하는 만족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꽃미남 구경하는 즐거움은 물론이다."(최수현 기자)

하지만 여기엔 가혹한 '악마의 룰'이 버티고 있다. 붙고 떨어지는 과정을 거쳐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일반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1등부터 101등까지 등수를 매겨 일렬로 세우고 숫자가 적힌 의자에 앉힌다. 자막으로 이름이 나올 때마다 등수가 옆에 반드시 따라붙는다. A부터 F까지 등급 따라 옷을 입히고 최상위 등급은 무대 꼭대기에서, 최하위 등급은 바닥에서 춤을 추게 한다. 소년들의 눈물을 지켜보며 시청자는 불편하고 께름칙하다.

방출되지 않기 위해 소년들은 죽도록 연습한다. 정형화된 한국 아이돌 육성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란 춤추고 노래하는 '기계'가 되는 것이다. 훈련을 이어갈수록 춤·노래·랩 실력을 겸비한 '상품'으로 완성되지만, 저마다의 개성은 흐릿해져 간다. "마지막까지 생존한 11명의 '최상품'은 방송 종료 후 이합집산해 다양한 조합으로 그룹을 구성하기에도 매우 효율적이다. 시청자 투표라는 명분을 내세워 버튼만 누르면 춤과 노래와 랩을 쏟아내는 '아이돌 로봇'을 만들어내는 꼴이다."(박상현 기자)

오직 등수로 사람을 규정하고 창의성은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인재를 찍어내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셈이다. "시즌1보다 심사가 엄격해져 등급 커트라인이 높아졌다는 심사위원들 자화자찬을 들으니, 변별력 높이겠다며 문제를 꼬고 또 꼬다가 사고 치는 수능 출제위원들을 보는 듯했다. 열 살 때부터 '조기 교육'을 받아온 15세 소년이 1·2등을 다투고 있는 상황도 우리 대학 입시와 판박이로 닮았다."(김윤덕 기자)

14세 최연소 참가자를 비롯해 10대 청소년이 다수 포함된 나이 어린 연습생들에게 등수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냉혹한 경연은 상처로 남을 수 있다. 다른 방식을 만들어줬어야 했다. 모두가 1등을 하지 않아도 저마다의 장점과 재능이 무지개처럼 펼쳐질 수 있도록. "할 수만 있다면 저 아이들 숙소에 들어가 책 읽어주는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 떨어져도 괜찮다고, 너만의 노래를 부르면 된다고 격려하며 등 두드려주고 싶다."(김윤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