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이주 속에도 名가수는 태어났다

"할아버지께선 '한국에 가면 네가 나의 눈이 되어서 고국 땅을 바라보게 될 거야. 나 대신 고국 땅을 모두 살펴봐 주렴' 하고 말씀하셨어요."

16일 서울 왕십리 한 영화관.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가수 방 타마라(73)씨가 이 말을 하다가 잠시 울먹였다. 방씨는 중앙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 가수들의 삶과 음악을 담은 다큐멘터리 '고려아리랑: 천산의 디바'(감독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개봉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방씨는 시사회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우리 고려인들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고려인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옮겨 살아야 했던 한민족을 일컫는다. 올해는 고려인 강제 이주 80주년을 맞는 해다. 지금도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에 고려인 3~4세를 포함해 50만명이 살고 있다고 추정된다.

방 타마라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1937년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 방 타마라는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려인들은 2차 대전 직후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언제나 근면하게 일하는 민족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유년 시절 구소련의 집단농장(콜호스)에서 일하면서 노래를 배운 방 타마라는 카자흐스탄 파블로다르 음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부모님을 일찍 여읜 뒤 1970년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고려극장에 입단했다. 다큐에서 방씨는 "슬픈 역사 속에서 내 성격은 더욱 강해졌다. 나는 군인 같은 여자"라고 말했다.

1932년 연해주에서 창립한 고려극장은 1937년 강제 이주로 카자흐스탄으로 옮겨왔다. 방씨는 1970~1993년 이 극장의 '아리랑 가무단' 소속으로 소련 전역 순회공연을 다녔다. 풍성한 성량과 나지막한 저음으로, 심수봉이 부른 곡으로 유명한 '백만 송이 장미'의 러시아어 버전은 물론, '어머니'와 '생각이 나면' 같은 한국어 노래와 재즈, 샹송 등을 불렀다. 방씨는 "언제나 무대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공연했다"고 했다.

영화 평론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김소영 교수는 고려인 여성 가수들의 사연을 듣고서 2014년부터 이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김 교수는 "격렬하고 험난했던 고려인의 이주사 속에서 이처럼 걸출한 여성 예술가들이 탄생했다는 사실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