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 '수퍼맨'이면서 '인디애나 존스'인 영웅"

성조기 유니폼에, 채찍으로 악당들을 휙휙 쓰러뜨리는 최강의 여성 히어로. 1970년대 린다 카터(65)가 연기한 TV 시리즈 속 원더우먼은 폭발적 인기를 누렸고, 그 시절 사춘기 소년들에겐 브라운관의 연인이었다. 지난해 미국 DC코믹스의 만화 속 수퍼 영웅들을 주연으로 등장시킨 '수퍼맨 VS 배트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개봉했을 때도 마찬가지.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갤 가돗(32)이 연기한 원더우먼 캐릭터는 홀로 빛났다.

오는 31일 영화 '원더우먼' 국내 개봉을 앞두고 패티 젱킨스(46) 감독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왜 또 하나의 수퍼 영웅, 그것도 여성 영웅 영화가 필요한지 묻자 감독은 "원더우먼은 배트맨 수퍼맨과 맞먹는 최고의 영웅 중 한 명일 뿐 아니라 남성 영웅 곁의 주변적 인물인 다른 여성 영웅들과 달리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젱킨스 감독은 자신의 '원더우먼'을 이렇게 강조했다.

"다른 세상에서 온 '수퍼맨', 전쟁과 첩보와 사랑을 다룬 '카사블랑카', 고대의 비밀을 밝히는 '인디애나 존스'의 정수가 모두 녹아 있고, 그 모두를 더한 것보다 훨씬 위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원더우먼의 탄생을 그린다. 본래 원더우먼은 그리스 여신 헤라의 가호(加護)를 받는 아마존 왕국의 공주. 신이 흙으로 빚어 생명을 불어넣은 여신이며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 아테나의 지혜, 헤라클레스의 힘, 헤르메스의 빠르기 등을 모두 갖춘 무적의 존재다. 이번 영화에선 왕국에 불시착한 조종사 '트레버 대위'(크리스 파인)를 통해 인간들의 전쟁에 대해 알게 되고, 신들이 부여한 능력으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인간 세계로 들어온다. 감독은 원더우먼 역의 배우 갤 가돗에 대해 오래 얘기했다. "그녀는 완벽해요. 린다 카터가 70년대에 딱 맞는 원더우먼이었듯 갤 가돗은 더 모던하고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강력하며 사랑스러운 이 시대의 원더우먼이죠."

젱킨스는 샬리즈 시어런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몬스터'(2004)로 널리 알려진 감독.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핍박받다 끝내 살인자가 되는 여성이었고, 많은 평론가가 이 영화를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해석했다. 반면 원더우먼은 과거 미국 대중문화의 대표적 '성(性) 상품화' 사례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녀가 원더우먼 감독을 맡은 데 대해 많은 이가 의아해했다. 감독은 "원더우먼은 모든 것을 갖춘 매력적 수퍼 영웅일 뿐"이라며 과잉 해석을 경계했다. "'몬스터'를 만들고 나니 제가 엄청 어두운(super dark) 감독으로 찍혀 있더군요, 하하. 일부러 여성주의 영화를 만든 건 아니에요. 나는 설득력 있는 여성 영화를 만들고 싶은 감독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살인자로 쫓기는 여성이었고, 지금은 수퍼 영웅일 뿐입니다. 늘 고난을 겪고 극복해내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가고, 이번 영화 속 원더우먼도 그렇지요."

2004년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와 처음 원더우먼 이야기가 오갔고, 2008년 한 번 감독 제의를 받았지만 출산으로 맡을 수 없었다. 따라서 감독 입장에선 10년 넘게 준비해온 프로젝트다. DC코믹스의 수퍼 영웅 영화들을 만들고 있는 제작사 워너브러더스 입장에선 시리즈의 성패가 이 영화에 달렸다. 감독은 "압박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오랫동안 꿈꿔 왔기에 어떻게 만들지 다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며 자신만만했다. "선과 악의 경계가 흐릿한 전쟁터, 고풍스러운 20세기 초의 유럽…. 마치 고전 영화처럼 우아하고 화려한 수퍼 영웅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