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에 밀린 카봇… 위기의 국산 완구·애니 산업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와 완구 업체들이 외국 업체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3~4년간 인기를 끌었던 로봇 장난감 터닝메카드와 카봇마저 주춤하면서 완구 업계에서는 "국산 완구 산업의 뿌리가 아예 송두리째 뽑히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2003년 '뽀로로'의 등장으로 관심을 끌었던 국산 애니메이션도 미국·일본산에 밀리면서 성장 정체 상태에 빠졌다. 뽀로로 출시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뽀로로 제작사인 매출 100억원대 오콘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거론되는 실정이다. 김종익 강동대 교수는 "국내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영세 사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내수 시장이 작은 데다 국산 애니메이션을 육성하겠다는 대형 배급사도 없다"고 말했다.

◇어린이날 선물 1~3위는 모두 레고

이마트가 어린이날을 앞둔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일까지 판매된 완구 제품 매출을 조사한 결과 1~3위는 모두 덴마크 레고의 장난감으로 조사됐다. 레고 등 외산이 대부분인 블록 완구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4%나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국산 제품인 헬로카봇·터닝메카드가 1·2위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10위권에 레고 제품이 5종이나 들어갔다. 이마트 관계자는 "2013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국산 제품이 반짝 선두를 차지했지만 다시 전통의 강자인 레고가 그 자리를 빼앗은 모양새"라고 말했다. 완구업계에서는 작년 1조2000억원대 국내 완구 시장에서 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80~90%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애니메이션 시장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6년 애니메이션 산업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이 가장 선호한 TV 애니메이션은 짱구는 못말려(26.4%), 원피스(19.9%), 명탐정 코난(18.6%), 도라에몽(10.2%)이었다.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그나마 지난1월 종영한 투니버스 자체 기획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 고스트볼의 비밀'이 지난해 방영된 국내 애니메이션 중 가장 높은 시청률(5.2%)을 기록한 게 눈에 띄는 수준이다.

극장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상반기 애니메이션 상영작 점유율을 보면 디즈니·드림웍스 등 미국 애니메이션 관객 점유율이 84%에 달했다. 올해 초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국내에 개봉한 역대 일본 영화 중 관객 수(360만명) 1위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해 상반기 국산 애니메이션 상영작 6편의 총 관객 수는 72만3000명이었다.

◇경쟁력 있는 국내 업체는 외국 업체가 사들여

경쟁력이 있는 국내 완구 업체들은 외국 업체에 넘어가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완구 제작, 유통, 마케팅, 애니메이션 제작, 재고 처리 등 막대한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외국 자본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터닝메카드를 개발한 손오공은 지난해 미국 마텔에 지분 11.99%를 넘겼다. 현재 마텔이 최대 지분을 가진 회사다. 한때 완구 시장 절대 강자로 불렸던 이 회사는 지난 1분기 매출이 230억원으로 작년 1분기에 비해 30% 넘게 감소했다. 또봇을 개발한 영실업도 2012년 홍콩계 사모펀드 HCP를 거쳐 2015년 홍콩 퍼시픽 얼라이언스그룹에 인수됐다.

애니메이션 사업은 미국, 일본과 비교조차 힘든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드림웍스 한 회사만 3500여 명을 고용하고 있지만 2015년 기준 국내 전체 애니메이션 제작 기업 수는 318개, 종사자는 총 4447명에 불과하다.

한 회사당 평균 직원 수는 14명. 전체 회사 중 110개 업체는 미국·유럽·일본 기업들에서 하도급을 받아 제작하는 업체다.

전문가들은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 유통 업체, 완구 업체 등 현재 뿔뿔이 흩어져 있는 업체들을 하나로 뭉쳐서 원스톱 스튜디오 체제를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CJ E&M 애니메이션사업본부 석종서 제작국장은 "해외시장에서도 먹힐 캐릭터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 업체들이 한군데 모여 제품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종합적인 사업 계획을 만들어야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