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환자 숨 넘어가는데…

#1. 충남 천안에 사는 김모(65)씨는 지난 2월 급성 당뇨 증상으로 동네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의사에게서 "큰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민간 구급차를 타고 서울 대형 병원으로 이동하는 2시간 내내 김씨 가족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 구급차가 응급구조사나 간호사 없이 운전기사 혼자 운행하고 구급 장비도 전혀 갖추지 않은 이른바 '깡통 구급차'였기 때문이다. 아들 김모(30)씨는 "혈당 체크 좀 해달라고 말해도 운전기사는 병원 금방 도착하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고 말했다.

#2. 지난해 말 강원 지역에선 응급구조사 없이 운행한 민간 구급차에서 환자 상태가 갑자기 악화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구급차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던 환자가 갑자기 호흡곤란 상태에 빠지자 구급차 운전기사가 뒤늦게 응급구조사를 구급차에 태워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환자는 며칠 뒤 숨졌다. 피해자 유족은 "응급 상황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고 구급차를 운영했다"며 해당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깡통 구급차'의 위험한 질주

보건복지부가 민간 구급차를 운영하는 전국 민간 이송 업체 91곳을 상대로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현장 점검을 벌인 결과 조사 대상 업체 16곳(17.6%)이 응급구조사나 간호사 등 법이 규정한 필수 인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채 운영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 구급차를 이용하는 환자들이 응급 상황이 벌어져도 제대로 조치를 받지 못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17일 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 김승희 의원(자유한국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6곳은 법정 인력 미확보 ▲6곳은 응급구조사 교육 미이행 등 위법 사실이 드러나 업무 정지, 과징금 등 처분을 받았다. 특히 91개 업체 중 45곳(49.5%)은 직원 건강보험 가입률이 50% 이하였다. 24시간 교대 근무하면서 응급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민간 구급 업체에 종사하는 직원의 절반 이하가 상주 직원이 아니라는 의미다. 건보에 가입된 직원이 한 명도 없어 건보 가입률이 0%인 업체가 4곳, 1~10%가 5곳, 11~20%가 7곳 등이었다.

현행법상 민간 이송 업체는 특수 구급차 5대 이상을 갖추고 구급차당 응급구조사, 간호사 등 필수 인원을 4명씩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24시간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지만 일부 업체는 지키지 않고 있다. 이들은 이송 건당 일부 요금을 떼주는 식으로 '아르바이트 응급구조사'를 이용하거나 심지어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 직원'을 등재하는 수법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송 업체를 운영하는 L씨는 "환자 이송할 때 운전기사 혼자서 구급차를 모는 경우가 많고, 1~2명 직원이 함께 타더라도 응급구조사 자격이 없는 인원이 타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이런 민간 구급차는 환자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아 병원 간 높은 요금을 받고 이동하는 택시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민간 구급차 운영 인력 태부족

지난 2013년 60곳이던 민간 이송 업체는 지난해엔 91곳으로 늘었고, 이들이 운영하는 구급차는 전국적으로 774대에 달한다. 하지만 구급차 운영 인력은 의료 기관은 물론 119 등 공공 구급 기관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2015년 응급 의료 통계 연보에 따르면 구급차 1대당 응급구조사·의료인 인력이 의료 기관은 6.7명, 119는 5.9명이었지만 민간 이송 업체는 1.1명에 그쳤다.

인력 부족은 그대로 환자 불편과 위험으로 이어진다. 2016년 국립중앙의료원이 실시한 구급차 서비스 만족도 조사에서 119 구급차 만족도는 84.8%, 의료 기관 구급차는 64.5%로 높은 편이었지만 민간 구급차는 42.2%였다. 김승희 의원은 "촌각을 다루는 응급 환자를 이송하는 업체들이 상주 인력을 제대로 갖추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 차원에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