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공주, 女帝를 얼리다

'얼음 공주'가 '여제'를 얼렸다. 필드 위에선 웃음을 보이는 일이 없어 얼음 공주라 불리는 김자영(26)이 세계무대를 정복한 박인비(29)를 누르고 5년 만에 우승컵을 들었다.

김자영은 21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강원도 춘천 라데나골프장·총상금 7억원) 결승에서 박인비를 3&2(2홀 남기고 3홀 차 승)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김자영은 세계적인 선수를 상대로 날카로운 샷과 퍼팅 감각을 선보이며 우승 상금 1억7500만원을 차지했다.

승부처는 김자영이 2홀 앞선 상황에서 맞이한 12번홀(파5)이었다. 김자영은 두 번째 샷을 홀 옆 1m에 갖다 붙여 이글 기회를 만들었다. 이 홀에서 티샷을 벙커에 빠뜨리며 고전하던 박인비는 세 번째 샷이 깃대를 맞고 홀 10㎝에 멈추는 '컴퓨터 샷'을 선보여 갤러리의 갈채를 받았다. 결국 박인비는 버디를 기록했으나 이글 퍼트에 성공한 김자영에게 홀을 내줘야 했다. 4강까지 실수 없이 전승 행진을 이어왔던 박인비는 추격 의지가 꺾인 듯 남은 홀에서 샷이 흔들렸다. 천하의 박인비를 흔들어 놓은 김자영은 16번홀까지 3홀 차 리드를 지키며 우승을 확정했다.

김자영은 투어 3년 차인 2012년에 3승을 거두며 차세대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프로에 데뷔할 때부터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선수"라며 주목받았고, 일찌감치 '삼촌 팬'을 몰고 다녔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좀처럼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늘어난 인기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상금 랭킹이 57위까지 떨어지며 60위까지 주어지는 이듬해 시드를 놓칠 뻔하기도 했다. 연이은 부진이 실력이 아니라 체력과 심리적인 문제라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김자영은 올 시즌을 앞두고 두 부분을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지난해까지 톱10에도 잘 들지 못했던 그는 이달 초 열린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를 차지하며 부활을 예고했다.

포커페이스로 경기했던 그는 우승이 확정되자 "힘든 시간 견딜 수 있게 해준 팬클럽 '자몽회'에 감사드린다"며 눈물을 터트렸다. 자몽은 '상큼한 경기를 하는 선수'라며 삼촌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박인비는 '국내 대회 무관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그는 2015년 커리어 그랜드 슬램(4대 메이저 대회 모두 우승)에 이어 지난해 리우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냈다. 하지만 이번 경기까지 17번의 국내 대회에서 준우승만 6번을 기록했다. 3~4위전에서는 시즌 2승을 올린 김해림(28)이 이승현을 3홀 차로 누르고 3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