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은 이제 없다… 스스로 뗏목 만들어 떠나라"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22일 특강을 위해 모교를 찾은 세계적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한국명 홍원서·46) 미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와 대담을 가졌다. 고려대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한 홍 교수는 2011년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용 자동차를 개발한 데 이어, 소방 로봇과 택배 로봇 등을 잇따라 내놓아 로봇공학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린다.

▲염 총장 우리나라 학생들이 공부를 '노동'으로 여기는 게 안타깝다. 대학 공부는 '호기심'이 본질이다. 이른바 명문대 학생들이 너도나도 정답만 맞히려 하니 이제는 글로벌 대기업들도 이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지금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게 더 중요한 시대다. 위험을 각오하고 실행에 옮기는 도전 정신을 북돋지 못한다면 교육의 미래는 어둡다.

▲홍 교수 초·중·고교·대학 교육을 한국서 받았고 미국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다. 미국 대학서 한국 유학생들은 '인간 계산기'로 통한다. 정답을 내는 수학 문제는 기막히게 잘 풀어 미국 학생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그런데 답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문제나 답이 여럿인 개방형 문제를 내면 손도 못 대고 헤맨다.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단서보다 더 많은 정보를 주거나 학생 스스로 찾아가도록 정보를 덜 줘도 쩔쩔맨다. 토론이나 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도 그렇다. 주입식 교육 탓인지 한국 학생들은 생각이 굉장히 굳어 있다.

▲염 학생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강화할 수 있도록 강의 중심의 대학 교육을 토론과 실습 위주로 바꿔야 한다. 고려대가 출석 안 부르고, 시험 감독 안 하고, 상대평가 안 하는 삼무(三無)를 시작한 것도 21세기 대학 교육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20세기 대량생산 시대엔 수나 언어로 기술 가능한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체험 등을 통해 개인이 내재화한 암묵지(tacit knowledge)가 둘 다 중요했다. 예를 들어 배우 안성기씨의 연기력이 암묵지다. 대학 교육은 학생들이 암묵지를 키울 수 있도록 소규모로 집중 교육하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21세기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학이 형식지를 가르쳐봤자 경쟁력이 없다. 학생들에게 '유람선은 이제 없으니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뗏목 만들어 고기 잡으러 떠나라'고 말하고 있다.

▲홍 학생들에게 '모든 일에 있어서 항상 이길 수는 없지만 늘 배울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고정관념 깨는 데 과감히 도전하길 권한다. 또 트렌드를 쫓아가기보다는 남들이 안 하는 자기만의 꿈을 찾아가면 좋겠다. 한국에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크다고 들었다.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실리콘밸리에선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을 쓰지도 않는다. 이제 곧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등장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공상과학 영화 터미네이터 같은 인간형 로봇이 30년 안에 나올 리 없다. 하드웨어인 로봇은 발전 속도에 한계가 있다. 로봇이 사람처럼 두 발로 자연스럽게 걷고 뛰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반면 소프트웨어인 AI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르다. 사람과 똑같은 지능과 형태를 갖춘 로봇이 나오려면 멀었다. 4차 산업혁명이 인공지능 로봇 시대로 통한다는 것은 과장된 평가다.

▲염 4차 산업혁명은 문명사적 대전환이다. 인공지능의 범용성 때문에 파급 효과가 엄청날 것이다. 전기가 처음 나왔을 땐 조명 용도에 그쳤지만 20~30년 사이에 거의 모든 분야에 쓰인 것처럼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의 형태를 갖춘 로봇은 아니더라도 출근 때 옷을 골라주는 시스템을 비롯해 로봇의 기능이 생활 곳곳에 자리 잡을 것이다. 이런 시대인데 정부가 20세기 방식으로 대학 문제를 풀까 걱정이다. 새 정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각 대학이 이렇게 하다 망할 수 있고, 저렇게 하다 흥할 수 있는 것이니 내버려두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