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켜주기는커녕 추월했다

"아이고 또 끼어드네." 25일 오후 2시 20분 서울 양천구 목동사거리를 지나던 소방차 안에서 천진구 양천소방서 소방장은 잇따라 한숨을 쉬었다. 전국의 혼잡 도로 283곳에서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을 실시한 이날 천 소방장 등을 태우고 양천소방서를 출발한 소방차 7대는 출발 직후부터 3~4분 간격으로 추월 차량에 발목 잡혔다. 7대 중 제일 앞 지휘차 스피커에서 "소방차 길 터주기는 내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살리는 길입니다"라는 방송을 계속 틀었으나 아랑곳하지 않는 차량이 수십 대였다.

이날 훈련은 전국 소방서 210곳 모두 참여했다. 화재 진압 '골든타임'인 6~7분 이내에 소방차가 도착할 수 있도록 양보 운전의 필요성을 일깨우려는 취지였다. 기자가 동행한 양천소방서의 소방차 행렬이 20분 거리인 10.7㎞ 구간을 돌고 소방서로 복귀하는 데 걸린 시간은 40분. 훈련 상황인지라 사이렌 대신 안내 방송을 틀었다. 신호도 전부 지켰다. 속도계를 보니 시속 40㎞였다. 보통 출동 시보다도 시속 10㎞ 정도 느렸다.

목동사거리를 지난 행렬이 9차로인 남부순환로에 진입하자 추월 차량은 더욱 늘었다. LP가스통을 가득 실은 1t 트럭은 차선이 좁아지는 지하차도 입구에서도 아찔한 추월을 시도했다. 뒤를 돌아보니 소방차 행렬 중간에 끼어 달리는 얌체 차량도 보였다.

훈련을 마친 소방관들은 "요즘 소방차에 길을 양보해주는 사례가 많아 혹시나 기대가 컸는데 아쉽다"고 했다. 지난 18일 광주 5·18 기념식 때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50대 남성을 119 구급차가 이송하는 도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탄 차량이 길을 양보해 화제가 됐다.

차량 주행 중 길을 양보할 때는 요령이 있다. 도로에서 소방차를 보면 일단 가까운 가장자리로 붙어 서행해야 한다. 일방통행로에서는 도로 오른쪽 가장자리에 세우고, 교차로에서는 비상등을 켜고 오른쪽 자리에 멈춰야 한다. 황영대 양천소방서 조사관은 "소방차가 보이면 건널목에 파란불이 들어오더라도 잠시 멈춰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