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또다른 뇌관, 특수고용 종사자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며 공공 기관과 민간 기업을 압박하는 가운데, '특수형태고용근로(특고) 종사자'의 노동권 보장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의 또 다른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인권위가 특고 종사자의 노동 3권을 보장하라고 정부에 공식 권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고 종사자는 형식상 개인 사업자이지만 사업주에게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임금 근로자 성격도 갖는다.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보험 설계사, 택배 기사, 화물차 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인권위, 노동 3권 보장 권고

인권위는 29일 특고 종사자의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노동조합법을 개정해 근로자에 포함할 것을 고용노동부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국회의장에게도 조속한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2007년에도 정부에 비슷한 권고를 했다. 특고 종사자 문제가 그만큼 해묵은 논쟁이라는 의미다. 사법부도 특고 종사자를 근로자로 볼 것인지 여부에 대해 하급심과 상급심에서 여러 차례 엇갈린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번 권고가 주목을 받는 것은 특고 종사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말 공약 홍보 영상에서 '특수 고용직 노동자의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특고 종사자의 노동 3권이 보장되면, 앞으로 택배 기사, 보험 설계사, 화물차 기사 등이 노조를 설립한 뒤 임금·단체 협상 결렬을 이유로 집단 파업을 벌이는 것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특고 종사자를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인 근로자로 보지 않는다. 이 때문에 특고 종사자는 사업주의 일방적 계약 변경·해지, 보수 미지급, 계약에 없는 노무 제공 강요 등 불이익을 당해도 대응하기 쉽지 않다. 노조를 결성하려 해도 사업주가 계약 해지로 대응하거나, 행정 관청이 노조 설립 신고서를 반려하는 경우가 많다. 특고 종사자 대부분은 산재·고용 보험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실업수당이나 산재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재계 "특고 문제까지 불거져 난감"

특고 종사자 규모는 자영업자와 근로자 중 어느 성격이 강하다고 보느냐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통계청이 집계하는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특고 종사자는 지난해 기준 49만명 안팎으로 집계된다. 반면 노동계는 근로자와 자영업자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14년 기준 230만명 정도를 특고 종사자로 보고 있다.

노동계에선 특고 종사자가 대기업에 간접 고용된 비정규직에 해당하는 만큼, 사용주가 직접 고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재계는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전방위로 몰아붙이는 와중에 특고 종사자 문제까지 불거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특고 종사자는 사업주와 도급 계약을 맺고 판매 실적이나 운송 실적에 따라 수입을 받는 자영업자"라면서 "단순히 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에 노동 3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은 본질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특고 종사자 사이에서도 노동 3권 보장 등을 놓고 의견이 갈린다. 특히 연 1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일부 보험 설계사는 정규직 전환에 난색을 보인다. 현재 보험 설계사는 개인 사업자로 분류돼 3.3%의 사업소득세를 적용받는다. 하지만 근로자로 인정되면 이보다 훨씬 세율이 높은 근로소득세가 적용돼 세금 납부액이 많아진다.

정규직 전환을 원하지 않는다는 특고 종사자도 없지 않다. 수도권 골프장의 한 캐디는 "개인적으로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이 좋다"면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매일 정시 출퇴근해야 하고 일이 없어도 골프장에 남아 있어야 하는 만큼 일괄적 정규직 전환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