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환해질수록 어두워지는 곳이라면? 어두워질수록 희끗희끗해지는 곳이라면? 주말에는 걸음을 뗄 수 없을 만큼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라면? 여자가 아닌, 남자 화장실 앞에 긴 줄이 생기는 곳이라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의식주 관련해 모든 게 다 있는 곳이라면? 만 원 한 장만으로도 큰 보따리를 챙겨 올 수 있는 곳이라면? 검은 비닐봉지가 판치는 곳이라면? 희로애락이 한 자리에 섞여 있는 곳이라면? 피부색 또한 다양한 곳이라면?
이런 질문에 대해 아마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전혀 답을 댈 수 없었을 듯하다. 하지만 그새 그 답인 곳에서 그리 머잖은 동네로 이사 온 후 수차례 드나들고 나니, 이제는 답을 대는 차원이 아니다. 앞서 질문의 서너 배는 더 만들어 스무고개, 혹은 서른 고개 쯤의 퀴즈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도드라진 특징들이 많은 일종의 ‘해방구’라고나 할까? 돈이 별로 없어도, 늙었어도, 타국에서 노동자로 살고 있어도 부담 없는 곳, 다름 아닌 동묘 도깨비시장, 더러는 벼룩시장, 구제시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동묘시장은 전철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동묘앞역 3번 출구에서부터 시작해 청계천 쪽으로 좌우편에 걸쳐 골목마다 가게와 노점이 빼곡하다. 어느 날 주말, 전날 비를 동반한 광풍이 미세먼지를 싹 쓸어버려서 날씨가 눈이 부셨다. 시장은 몇 발자국을 걸어나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인파 가운데 어두운색의 옷을 걸친 노인층이 단연 많다 보니 날이 환해질수록 어두워지는 곳이요, 머리카락색은 점점 희끗희끗해지는 곳이다.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동묘의 화장실 앞은 남자용 쪽 줄이 늘 긴 것도 다른 데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이상한 기대감
시장에는 없는 게 없다. 덤핑으로 나온 새 상품들도 있고, 과거 그 자태가 휘황찬란했을 골동품과 유행 지난 옷가지며 신발, 가방, 주방용품, 가전제품, 가구, 책, 게다가 유통기한이 임박한 먹거리까지. 동네 의류수거함에서 방금 가져왔음 직한 옷, 이사하느라 정리했을 가재도구들도 보인다. 분리수거용 비닐봉지에서 물건들을 꺼내 좌판에 늘어놓는 걸 목격한 적도 있으니 추측만은 아니다. 그래서 내 발길이 자꾸 이곳을 향하는 걸까? 이사하며 버렸던 그 많은 옷과 책, 살림들과 어쩌면 상봉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기대마저 하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고 되사올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아끼다가 딴에는 과감히 버렸던 물건을 여기서 만나면 반가울 게 틀림없다. 누군가 임자를 잘 만나 좋게 사용되길 빌어줄 마음이 들 것도 같다. 여기 골동품 가격은 만만찮지만, 헌 옷은 2천 원에서 3천 원, 책은 1천 원, 유통기한이 임박한 먹거리들은 반값 정도니 1만 원이면 꽤 푸짐한 보따리를 들게 된다. 값을 치른 물건은 어느 상인이나 공히 검은 비닐봉투에 넣어준다. 그 때문에 동묘앞역에서 전철에 오르는 이들의 손엔 너나없이 크고 작은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있기 마련이다.
나는 구경꾼에 불과할 뿐 빈손이다. 이사하며 하도 살림 구조조정에 진을 뺀지라 사용해서 없어질 게 아니면 절대 사지 않겠노라 결심했던 터다. 하지만 모자는 2개 사고 말았다. 모자를 즐겨 쓰는 내게 어울려 뵈는 새 상품인데도 가격에 0이 하나 없을 정도로 싸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가게를 기웃거릴 뿐 아예 살 생각이 없는, 아니 돈이 없어 사지 못하는 노인들도 부지기수다. 10미터도 안 되는 매대에 점원 서넛이 붙어있기에 주인이 다른가 했는데, 양팔을 뻗어 간혹 절도를 경계할 수 있기 위해서라는 걸 나중에 들어서 알았다.
한 번은 지나다가 점원이 “노인xx, 도둑xx!”라고 욕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주로 노인들 덕에 장사하는 시장에서 그렇듯 전체를 매도하는 막된 욕을 사방이 다 들리도록 내질러도 되는 건가? 내가 괜히 화가 나고 서글퍼졌다. 세상을 뜬 사람들의 유류품도 더러 시장에 나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게 생각나면서 그야말로 희로애락이 한 자리에 섞여 있는 시장이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단연 즐거움이 커 보이는 이들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옷과 신발을 싼값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 어쩌다 보이는 노랑머리에 파란 눈의 관광객들이다.
관우가 와서 본다면
동묘를 처음 찾았을 때 그 첫인상은 꼭 동묘시장에서 파는 허름한 물건들 같았다. 동묘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의아했다. 중국의 관우 장군을 제사하는 사당이라는데, 내겐 삼국지에서나 익숙한 이름인 관우가 왜 여기 모셔진 것일까? 흔히 고궁 대문을 들어서면 눈에 띄는 곳에 꽂아있는 안내 팸플릿도 보이지 않았다. 입구 왼편에 안내소 비슷한 곳이 있어서 물어보니까 A4용지 한 장을 줬다. 흑백으로 선명하지도 않게 한 면에만 복사된 설명서에서 그나마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관우는 원래 관성제군, 또는 관보살이라고 해서 중국인들에게는 무운과 재운의 수호신으로 신앙대상이었다고 한다. 명나라 영락제가 타타르를 정벌했을 때와 청나라 강희제가 대만에 있던 명나라 유신들의 폭동을 진압하려 했을 때, 관우의 영험이 있었다 하여 각지에 그를 우상으로 모시는 사당을 세웠다. 서울의 동묘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명나라 군대가 왜군을 물리칠 때, 관우의 신령이 여러 번 나타나서 덕을 입었다며 건립됐다. 명나라 신종이 비용과 친필로 쓴 액자를 보내오고, 선조도 협조했다.
그렇다면 재운은 대체 관우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위나라의 조조에게 붙잡혔을 때, 관우는 조조가 내리는 푸짐한 금은상을 물리치고 촉나라 유비에게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촉나라의 무장이자 유비, 장비와 도원결의한 의형제로서 충성심과 의리가 앞서서였다. 그런데 그 가치보다는 되레 그가 마다한 재물의 신으로서 섬겨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동묘시장이 날로 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쇠락해 뵈는 동묘와 호객 소리로 요란한 시장 사이에서 이런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관우가 청룡언월도를 들고 와서 본다면 뭐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