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광활한 산 정상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분홍의 진달래꽃밭이 펼치는 들판 뒤쪽으로 대자연의 웅장한 모습이 배경처럼 자리하고 있었다.하늘 위로 구름다리처럼 걸쳐진 계단을 오르자 에어컨 바람으로는 흉내 내지 못하는 고산(高山)이 지닌 자연의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이 전달하는 황홀함에 취해 계단을 오른다.
육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정경들이 푸른 바다 위에 펼쳐진다. 푸른 바다 빛깔이 그러하고 그 바다 위를 떠도는 은 비늘 같은 반짝이는 바다의 물소리가 그러하다.
'지슬'이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서 제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야 지슬이 제주 방언으로 감자임을 알게 되었고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제주가 지니고 있는 슬픔의 역사를 알게 되었다.
영실 입구에서 시작된 산길은 마음속에 오래 품고 있었던 연인을 만나러 가는 마음이 되어 힘든 줄 모르고 발걸음을 옮겼다. 숲길의 끝에서 만나는 한라산 중턱의 병풍바위와 오백나한의 모습에서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한다. 칼로 자르듯 이어지는 수백 개의 바위능선이 이루어가는 장엄함은 사진보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아가는 것이 더 오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겨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장엄한 능선의 모습이 사라지고 좁아진 숲길은 한라산이 지니고 있는 화산의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구불구불한 너덜 길의 숲길을 지나 하늘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어느 순간 잘 꾸며놓은 정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하얀 돌의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은 영실이 지닌 아름다움을 펼치기 전의 서곡으로 들려주는 전주곡 같았다. 영실의 넓은 들판은 이미 떠나갔다고 생각하였던 봄날의 꽃밭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영실의 고원지대는 꿈길에서 걸어가는 것 같은 몽환적 느낌을 받게 한다.
한라산의 남벽이 보이기 시작하는 장소에 있는 선작지왓(명승 제 91호)의 계단을 오르자 영실의 꽃밭 뒤로 구름이 걸려 있다. 구름이 움직이는 대로 분홍의 꽃밭은 음영의 조화를 이루면 색의 변화를 파노라마처럼 펼쳐간다.
그 길을 따라 학생들이 무리지어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지나가는데 한라산의 남벽을 배경으로 걸어오는 그들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여행을 온 한국인 3세들이라 하였다. 자신의 나라를 가슴에 품고 찾아와 밝은 모습으로 걸어가며 그들이 전달하는 우리의 언어 "안녕하세요!"처럼 한라산이 품고 있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늘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을 따라 함께 인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