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효모 찾기' 1만번의 도전… SPC그룹, 누룩에서 답을 찾다

31일 오전 서울 관악구 서울대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 무균(無菌) 작업실. 심상민 연구원이 사과와 배에서 추출한 미생물을 배양(培養)한 투명 유리판에서 빵을 만들 때 쓰이는 효모(酵母)만을 골라 '발효력 측정기'에 넣었다. 제빵용으로 활용하려면 발효력이 우수해야 한다. 측정기에 들어간 사과 효모에서 기포가 충분하게 발생하지 않자 심 연구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12년 동안 1만건 넘는 시료에서 효모균을 찾아 실험했지만, 1단계인 발효력 검사를 통과한 효모균은 10여개에 불과하다"며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작업"이라고 했다.

지난해 SPC그룹이 자체 발굴한 제빵용 토종 효모 'SPC-SNU 70-1'은 1만번 실패 끝에 발견한 효모균이다. SPC그룹이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과 공동으로 토종 효모 개발에 나선 지 11년 만.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는 미생물 연구, 소재 개발 등 식품 전반의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기초 연구를 맡기 위해 지난 2005년 세워졌다. 석·박사급 연구원 20여명이 포진했다.

여기서 찾은 토종 효모로 만든 '천연효모빵'들은 지난해 4월 출시 이후 1년 만에 1억2000만개가 팔렸다. 1년간 국민 1인당 2.4개 천연효모빵을 소비한 셈. 현재 판매하는 천연효모빵 종류는 167종에 달한다. 쉐이크쉑 한국 점포에 쓰이는 번(햄버거빵)도 SPC그룹이 만든 천연효모빵을 쓴다.

◇"제빵 산업의 효모는 자동차의 엔진"

강신달 연구소장은 "제빵 산업에서 효모는 자동차 산업으로 치면 엔진"이라고 설명했다. 자체적으로 효모를 대량 배양하는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프랑스·일본·영국·캐나다·중국 등에 불과하다. 천연효모빵 출시 전 국내 제빵 업체는 효모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했다. 한국식품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제빵 업체들이 효모 수입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연간 500억원에 달한다. SPC그룹은 핵심 기술을 해외에 의존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소 건립에 나선 것이다.

연구소 연구원들은 주말마다 전국 방방곡곡으로 출장을 떠난다. 각종 과일과 토종꿀, 김치 등 발효력이 뛰어난 효모균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재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지리산·설악산 등 청정 지역에선 이끼 위에 밀가루 반죽을 올려놓기도 한다. 하루 뒤 다시 찾았을 때 반죽이 부풀어 올라 있다면 발효력이 있는 효모균이 있다는 뜻. 심 연구원은 "밤사이 야생 동물이 반죽을 먹어치워 실험이 실패한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지난 2008년 전통 누룩에 집중해 효모 발굴에 나섰다. 연구에 진척이 없자 허영인 회장이 "한국 전통 발효제인 누룩에서 천연효모를 찾아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누룩 원료가 통밀이기 때문에, 누룩에서 추출한 효모가 밀가루 반죽에서 적응력이 우수할 것이라는 가설(假說)을 세웠다. 주요 와인 생산국인 프랑스에서는 포도에서 효모 생산하는데, 마찬가지로 한국은 막걸리의 원료인 전통 누룩에서 효모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연구소에 따르면 누룩도 지역의 평균기온이나 일조량 등에 따라 성분이 차이를 보인다. 연구진은 전국 각지의 누룩을 일일이 조사한 끝에 2015년 전라남도의 토종 누룩 샘플에서 제빵 능력이 탁월한 천연 효모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SPC그룹 관계자는 "SPC-SNU 70-1로 만든 빵은 원료의 맛이 살아있으며 담백하고 쫄깃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수입 효모에 비해 빵이 보관 과정에서 딱딱해지는 속도를 늦추는 기능이 뛰어나고,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냄새(발효취)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주류·화장품 등 다른 산업 분야에 활용

SPC그룹은 SPC-SNU 70-1 효모 기술에 대한 국내외 특허 등록을 마쳤다. 연구소는 최근 효모균의 '유전자 지문 개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효모 종균(種菌)이 해외에 유출되거나 부당하게 사용되는 걸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해외의 효모 업체는 물론 종묘사들은 이 기술을 통해 미생물 정보가 해외로 유출되는 걸 철저히 차단하면서 바이오 산업을 '국가 자원화'하고 있다. 유전자 지문 개발을 통해 기존 효모와 새로 발견하는 효모 간 유전체 비교가 가능해져 상업화에 적합한 새 효모를 발굴하는 데 속도를 낼 수 있다. SPC그룹 관계자는 "천연효모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적용할 제품군을 확대하기 위해 연구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연구소는 기존 SPC-SNU 70-1보다 품질이 더 뛰어난 효모를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연구소 산하에 '바이오 신소재 센터'를 설립해 효모와 유산균 등 다양한 미생물의 대사 산물을 활용한 천연 바이오 신소재 개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천연 바이오 신소재는 빵의 맛과 풍미, 식감 등을 향상시키는 데 활용할 예정이다. 향후 제빵 분야를 넘어 건강 기능 식품이나 숙취 해소제, 화장품 원료, 대체 에너지 등 첨단 바이오 산업 분야까지 확대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연구원들은 각종 누룩에서 추출한 효모를 이용해 직접 빵을 만든 뒤 미네랄과 식이섬유 함량 등을 확인했다. 이들은 "특정한 맛이 강하거나 풍미가 약해서 빵을 만드는 데 부적합 판정을 받은 효모 정보도 폐기하지 않는다"며 "실험에 '실패한' 미생물 정보를 정리해 '미생물 은행'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강 소장은 "미생물은 제빵뿐 아니라 주류·화장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도가 높은 국가적 자산"이라며 "제빵용 효모를 찾을 목적으로 진행한 연구지만, 이를 통해 국내 발효 식품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