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예능? 난 둘 다!

"핀란드 정부의 교육 투자는 얼마나 되나요?" "주입식에서 벗어나고 있는 한국의 수업도 소개해 주세요." "패널 중에 현직 교사가 꼭 포함됐으면 좋겠습니다."

교육방송이 아니라 tvN '수업을 바꿔라'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현직 교사들 목소리다. 예능 위주인 tvN에 선생님들이 의견을 쏟아내는 건 이 프로그램이 선진국 학교 수업을 살펴보며 우리 교육의 대안을 모색한다는 목표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외국 학교의 수업을 체험하는 MC의 모습을 스튜디오의 다른 출연자들이 지켜보며 토론한다. 리얼리티 예능의 형식을 빌려 딱딱한 교육 다큐멘터리와 차별화하려는 시도다.

TV에서 예능과 교양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예능은 정보와 의미를 담고, 교양은 재미와 웃음을 추구한다. CJ E&M의 엔터테인먼트(오락) 채널 tvN은 최근 교양 성격을 가미한 예능 프로를 전면 배치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 '우리들의 인생학교', 시사 이슈를 과학 관점에서 풀이하는 '밝히는 과학자들'이 지난달 방송을 시작했다. 이달 2일부터는 정치·과학·문학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함께 여행하며 박학다식을 뽐내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도 방송한다. '교양형 예능'을 전문으로 제작할 부서도 신설했다. CJ E&M 김지영 부장은 "게임이나 영화 같은 즐길 거리가 많아지면서 TV가 재미만 내세워서는 점점 어려워진다"며 "정보와 지식을 담아 예능 프로의 세분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방송 EBS는 지난 3월 개편에서 'EBS답지 않은' 프로그램을 늘렸다. '까칠남녀'는 겨드랑이털 제모부터 여성 병역(兵役) 논란까지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토크쇼로 화제다. 일과 육아에 지친 엄마에게 하루의 자유 시간과 휴가비 100만원을 주고, 다른 가족들은 리얼리티 예능처럼 엄마의 행방을 찾아 나서는 '엄마를 찾지마'도 편성했다.

어느 한쪽으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프로그램도 나온다. TV조선 '배낭 속에 인문학'은 여행에 인문학 강연을 버무렸다. 인도로 떠난 배우 정준호와 인문학 강사 최진기는 먹을거리나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는 대신 갠지스 강가에서 힌두교 의식을 지켜보며 인도인들의 세계관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길가에 모기장만 둘러치고 사는 가난한 릭샤(인력거)꾼의 거처와 부유층의 집을 방문하며 뿌리 깊은 카스트 제도의 현실도 살펴본다. 방송 중간 중간엔 인도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요점 정리로 보여주는 강의 코너도 나온다.

SBS '주먹 쥐고 뱃고동'은 조선시대 어류 도감인 '자산어보'를 현대에 맞게 새로 쓰겠다는 프로그램이다. 고기잡이 소재의 여느 예능처럼 출연자들의 고생담과 먹음직스러운 해산물도 나오지만, 한국의 바다에서 명태가 사라진 원인이나 아시아 최초로 연어 양식에 성공한 국내 양식장을 조명하며 해양 생태계의 변화를 다룬다. KBS 문화재 프로그램 '천상의 컬렉션'은 오디션처럼 투표를 도입해 긴장감을 더했다. 3명의 출연자가 각각 우리 문화재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하고 방청객 투표로 최고의 보물을 가린다. 방송평론가 공희정씨는 "소재의 한계를 벗어나려다 보니 교양과 예능의 융합 현상이 나타난다"며 "제작진 입장에선 교양 프로의 콘텐츠에 예능의 속도감 있는 진행을 도입하는 식으로 양쪽의 장점만 취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