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6.02 15:39

입원을 했다. 이주 전부터 오른쪽 얼굴에 견딜만하게 통증이 왔다. 괜찮겠지 싶었다. 많이 아픈 것이 아니었으니까. 입술에 포진이 생기고 그 때문인지 이번에는 통증이 심해서 잠을 설쳤다. 가까운 동네 병원에 가니 소견서를 써주며 큰 병원으로 가보란다.

부정맥으로 와파린까지 복용하고 있는지라 뇌졸중에 대해 민감한 편이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 예약을 하고 입원을 했다. 담당 의사는 뇌 MRI를 찍으란다. 뇌에 이상이 없으면 3차 신경이 의심되니까 정밀 MRI를 찍어 보잔다. 최고의 검사인 줄 알았는데 정밀검사가 또 있다는 것이다.

처음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정밀 MRI를 찍었다. 처음 해보는 검사인데 조영술 촬영을 위해 본인 싸인을 받는다. 겁이 조금 난다. 40여 분간 커다란 기계 속에 누워 있었다. 소리가 시끄럽다며 귀마개를 해주고 머리와 팔을 고정하고 핏줄을 맑게 비춰 촬영할 수 있는 주사를 맞았다. 조금 무섭다.

사진=조선일보DB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말로는 언제든지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고 했다. 그건 말뿐이었는지 모르겠다. 조금 아프다고 큰 병원에 와서 이런 검사를 받는 나를 본다. 아직 죽기 싫은 건 아닐까. 그냥 검사하러 왔다가 의사한테 등 떠밀려 여기까지 온 기분이다. 살겠다고.

'살아있는 시간에 감사해야 하는데', '소중함을 알아야 하는데'라는 마음으로 사는 게 쉽지 않다. 살아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산다.

병원의 새벽은 조용하다. 커다란 건물이 모든 것을 안아버린 듯하다. 고통, 죽음, 두려움, 절망, 슬픔, 희망까지도 말이다. 이른 새벽 담당 간호사가 주렁주렁 약주머니가 매달린 박스를 끌고 누워 있는 환자들의 혈압, 체온, 맥박 등을 체크한다. 병실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 명 두 명 잠에서 깬다.

오전 7시가 되자 아침 식사가 배달된다. 환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냉장고를 열고 집에서 가져온 밑반찬들을 꺼낸다. 식사를 마치자 담당 의사들의 회진이 시작된다. 의사의 말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밤새 끙끙 앓던 할머니가 입맛 없다고 투덜대며 식사를 한다. 진통제 주사 덕인지 생기가 있어 보인다. 옆자리의 환자와 잘도 떠든다. 주거니 받거니 쿵짝이 맞는다. 입으로 기가 모이나 보다. 아줌마들의 특기인 수다. 시작되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본인들조차도 말이다. 그래도 그분들 덕분에 회색빛 병실에 활기가 돈다. 한 분은 지칠 줄 모르는 그들의 수다에 귀마개를 한다.

말동무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모든 걸 내려 좋고 헐렁한 병원복을 입은 그녀들은 한 맺힌 인생사를 털어놓는다. 울고 때론 웃기도 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을 해주고 본인의 일인 것처럼 화도 내고 아파해준다. 아마도 저분들은 치료되었을 것이다.

과마다 병실 분위기가 다르다. 여기는 신경과라 환자들이 여유가 있어 보인다. 내과나 암 병동 같은 곳은 얼마나 암울할까 생각해 본다.

3일째 되는 날.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검사결과를 받았다.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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