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 '코 막히는 사연'

한 해 1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 전북 전주 한옥마을(교동·풍남동)은 매년 4월 무렵부터 두 달 가까이 몸살을 앓는다. 우수관(雨水管·빗물을 모아 흘려보내는 관) 맨홀에서 썩는 냄새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전주시는 해마다 6월쯤 한옥마을 우수관 준설 작업을 한다. 하지만 이후 음식점이나 관광객이 버린 오물이 쌓이다 이듬해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부패하면서 악취가 나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오전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慶基殿·조선 태조의 영정을 봉안한 곳) 인근 우수관 맨홀 뚜껑을 열어보니 구정물과 나뭇잎 등이 뒤섞여 썩어 있었다. 한옥마을 전 지역이 금연 구역인데 담배꽁초도 나왔다. 청소에 나선 전주시 직원이 시커먼 흙을 퍼내자 지나가던 사람들은 코를 막고 잰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우수관은 한옥마을 태조로(太祖路)를 따라 15~20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편의점 인근 맨홀에선 라면 국물이 섞여 다른 곳보다 더 역한 냄새가 났다. 꼬치구이를 들고 다니면서 먹다가 나무 꼬챙이를 맨홀에 버리는 관광객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맨홀에선 꼬치구이집 등 일부 음식점에서 몰래 버린 것으로 보이는 튀김용 폐기름도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시 관계자는 "폐기름은 전문 수거 업체에 돈을 주고 처리해야 하지만, 업소들이 이 비용을 아끼려고 그냥 우수관으로 버리는 듯하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최근 가뭄과 때 이른 무더위 탓에 냄새가 더 난다. 사람이 많이 오는 주말이 지나면 훨씬 심해진다"고 말했다.

관광 명소인 전주 한옥마을엔 매년 관광객이 늘어 지난해엔 1000만명을 돌파(1066만명)했다. 전주시는 한옥마을 일대(29만8260㎡)에 묻힌 우수관로(총연장 24㎞) 중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구간을 중심으로 매년 준설 작업을 한다. 작년엔 3.6㎞ 구간에서 55t, 올해는 지난달 31일부터 사흘 동안 3.5㎞ 구간에서 48t의 오물을 걷어냈다. 시는 평소에도 맨홀에 쌓인 오·폐물을 수시로 치우긴 하지만 한계가 있다. 담당 인력이 5명뿐인 데다 이들이 전주시 완산구 관내의 모든 우수관 청소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한옥마을의 우수관과 오수관(汚水管)을 분리하는 공사 진행률(78%)이 더딘 것도 좋지 않은 냄새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전주시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태조로·은행로 일대에 오수관로 9.7㎞를 설치했다. 아직 오수관이 없는 2.7㎞ 구간의 주택에선 우수관으로 생활하수를 흘려보내는데, 정화조만으로는 냄새를 다 제거하지 못한다. 시는 내년부터 2021년까지 97억3400만원(국비 50%, 시비 40%, 도비 10%)을 들여 오수관 2.7㎞를 새로 깔고, 기존 오수관 개보수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관광객이 급증할 것을 예측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예산이 모자라 청소 인력이나 음식물 무단 투기를 단속할 인력을 늘리지 못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말했다. 주민 양모(71)씨는 "관광객이 워낙 많다 보니 밤낮으로 소음 문제가 심각한데, 악취까지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면서 "한옥마을은 관광객만 즐기다 가는 곳이 아니라 주민들이 사는 공간이다. 쓰레기통도 마을 곳곳에 있는데 방문객들이 귀찮다고 아무 데나 오물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