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트는 새벽녘, 북부 아프리카에 있는 카사블랑카 공항에 내렸다. 이름이 멋진 카사블랑카의 뜻은 하얀 집이다. 그만큼 하얀 집이 많다는 뜻이다. 버스를 타고 카사블랑카의 고속도로를 달린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해가 뜨니 주변의 모습들이 선명히 드러난다. 아름답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따뜻하다. 내 상상 속의 아프리카가 아니다. 카사블랑카란 말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아프리카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었다니 내 상상과 다른 모습에 마냥 신기하다. 보이는 풍경들은 내 고정관념들을 깨버리기에 충분했다. 어디를 가나 잘 정돈 된 도로가 있고 아랍풍의 건물들이 반듯하고 정겹다. 오히려 동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보다도 훨씬 잘 조성 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무지 했다. 그 동안 내가 생각했던 모로코는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었다. GDP가 겨우 3,000$이니 말해 무얼 할까 싶었다. 거기다 이슬람 국가이니 여자들의 행복도는 더 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내다보는 모로코는 행복이 넘쳐나는 나라였다. 단정하고 깨끗했으며 아름다웠다. 어떤 이들은 햇빛을 가릴 수 있는 가리개 정도를 쳐 놓고 해먹을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쳐놓고 흔들거리며 유유자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족들이 어울려 공을 차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하산 탑을 보다
고속도로를 달려 모로코 라바트에 도착했다. 대서양 해안에 있는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는 카르타고와 로마의 무역항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던 도시다. 구도심에는 당시의 흔적들이 아직 이곳저곳에 남아있다. 아랍인들에게 정복당한 이후 이곳은 요새화된 군사 진영이 되었으며, 야쿠브 알 만수르(정복자)는 1184년 권력을 잡았다. 그는 스페인으로 더 깊숙이 쳐들어가 기독교 포로들을 데려와, 그가 수도로 삼은 라바트에서 노예로 일하게끔 하였다. 그가 지었던 도시 성벽의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야심 찬 계획은 '모스크 엘 하산'이었다. 알라르 코스에서 스페인들에게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계획된 이 모스크는 그가 거느린 군대 전체가 들어갈 정도로 크게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야쿠브 알 만수르는 탑을 완성하기 전인 1199년 사망했다.
그 바람에 하산 탑은 공사가 중단되었다. 한 면이 16m인 정사각형 형태로 44m를 세우고는 중단된 것이다. 라바트의 상징이 된 '하산 탑' , '아름다운 탑'을 의미하며 붉은 돌로 이루어진 탑은 애초 계획대로라면 두 배의 높이가 될 예정이었다 한다. 여섯 개의 각 층에는 방이 하나씩 있고 건물 안에는 폭넓은 경사로가 위쪽을 향해 올라가게 되어 있는데, 이는 술탄이 말을 탄 채 올라갈 수 있도록 건설되었다. 중단된 탑 아래의 남쪽에는 300개가 넘는 돌기둥이 시리도록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말없이 서 있다.
페스 메디나 가죽염색 공장
메디나는 8세기 고대도시이자 세계 최대의 미로 도시라고 알려진 곳이다. 8세기에 지어진 집들이 수많은 구불대는 작은 골목 미로 속에 아직 존재하고 있단다. 실지로 버스에서 내려 걸어보니 폭이라고 해 봐야 1~2m밖에 안 되는 길, 살이 찐 사람들 둘이 만나면 비켜 가기도 힘들게 생겼다. 9000여 개의 미로들이 서로 맞물려 있는 그 길을 내가 걷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누구는 길을 잃어버리기 위해 이곳에 온다지만 나는 혹여나 길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앞사람의 머리통만 바라보며 열심히 따라갔다. 그러면서도 연신 가는 틈틈이 작고 허름한 가게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다.
페스는 수천 년 전부터 가죽을 생산해왔다. 세계 최고 품질로 꼽히는 페스의 가죽은 '말렘'이라고 불리는 장인의 손에 의존해 털을 벗기는 일에서부터 염색까지 중세 시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비둘기 똥이나 소의 오줌, 재와 같은 천연재료를 염색재료로 쓰는 만큼 이곳의 냄새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독하다. 그러나 그 염색한 후의 그 색채는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