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의 역사가 여행의 역사다

거리에서 3초마다 볼 수 있다고 해서 '3초백'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끄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 그 뿌리는 여행에 있다. 여행용 트렁크 가방으로 출발한 루이비통이 160년 역사를 돌아보는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VOLEZ, VOG UEZ, VOYAGES)-루이비통'전은 '여행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서울 동대문 DDP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대형 화면엔 흰 구름 가득한 영상이 흐른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이따금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전시장에 놓인 수많은 가방은 여행 기술의 발전을 따라간다.

브랜드 창립자 루이 비통이 1854년 프랑스 파리에 자신의 이름을 건 상점을 내면서 처음 선보인 '트리아농 그레이 캔버스'는 혁신이었다. 당시 여행용 트렁크는 빗물이 잘 흘러내리도록 둥근 형태로 만들었는데 차곡차곡 쌓을 수 없어 불편하고 무거웠다. 어려서부터 목공과 포장 기술을 익힌 루이 비통은 바닥이 평평한 사각형 트렁크를 처음 내놔 획기적 인기를 끌었다.

루이비통의 상징인 다미에(바둑판 무늬)와 모노그램(이니셜로 만든 무늬) 역시 이 가방의 인기에서 비롯됐다. 모조품이 쏟아지니 차별화된 디자인이 필요했던 것. 19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루이비통은 그에 걸맞은 트렁크를 계속 개발했다. 요트 여행 때 하루 6~8번씩 옷을 갈아입는 여성들을 위해 빨랫감을 따로 넣을 수 있는 가벼운 소재 '스티머백'을 만들었다. 자동차에 고정하는 트렁크, 기차 좌석 아래 밀어 넣는 트렁크, 비행기에 적합한 가벼운 트렁크가 나왔다. 교통수단이 발달할수록 가방은 가벼워지고 작아졌다. 오늘날 루이비통을 대표하는 핸드백 중엔 1920~1930년대 여행가방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유명 인사 여행가방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등은 여행할 때 책장을 옮기는 듯한 '라이브러리 트렁크'를 갖고 다녔다고 한다. 배우 카트린 드뇌브의 보석함,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윤여정의 화장품 상자를 볼 수 있다. 미술 작품, 지휘봉, 바이올린 전용 트렁크와 포크·식기를 갖춘 피크닉 트렁크도 있다.

전시 마지막엔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에 루이비통과 대한제국이 함께 참여했던 인연을 기념하며 대금, 장구 등 전통 악기와 루이비통에서 특별 제작한 가야금 트렁크를 전시했다. 그 옆엔 '피겨 여왕' 김연아를 위해 2012년 만든 흰색 가죽 스케이트 트렁크가 있다. 8월 2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루이비통 국내 진출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여는 행사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은 7일 저녁 신라호텔에서 열린 VIP 행사에 참석해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만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