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8兆시장 잡자… 뜨거운 물 전쟁

LG화학이 이집트에서 최대 규모의 해수 담수화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글로벌 물 산업 전문 기업인 메티토(Metito)사가 이집트 엘갈라라와 포트 사이드에 건설하는 해수 담수화 공장에 들어갈 'RO필터'의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RO필터는 이 두 공장에서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해 민물로 바꾸는 데 쓰인다. 두 공장은 각각 15만t 규모로 하루 100만명에게 담수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이다. LG화학으로서도 이번 수주가 2014년 4월 수처리 산업에 뛰어든 이후 최대 성과다. LG화학 관계자는 "2015년 900억원 투자에 이어 올 초 청주공장 라인 증설에 400억원을 더 투자했다"면서 "내년 쯤이면 손익분기점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LG뿐만 아니라 롯데, 효성, 코오롱 등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물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7139억달러(803조원)였던 세계 물 산업 시장이 2020년 8341억달러(938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정부도 대구에 총투자액 4359억원 규모의 '물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며 지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 산업이란 수자원과 용수를 생산하거나 공급하고, 하·폐수를 처리하거나 재이용하는 등 물 순환과 관련된 사업 및 서비스를 총칭하는 말이다. 넓게는 댐과 지하수·하천 개발, 생수 사업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동안 국내에선 GS건설·두산중공업 등이 해수 담수화 플랜트 위주로 사업을 펼쳐 왔다.

◇ LG, 롯데, 효성 등 국내 대기업 앞다퉈 뛰어들어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정수나 하수·폐수 처리에서 사용하면 물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 '얇은 막'(멤브레인)을 만드는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모래나 화학약품을 이용하는 방법보다 수질개선 효과가 우수한 데다 침전물이 적게 생기는 등 장점이 많아 쓰임새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LG화학의 RO필터는 이 얇은 막 중 가장 작은 물질까지 걸러낼 수 있는 제품군에 속한다. 이 분야는 현재까진 다우, 니토덴코, 도레이 등 메이저 3사가 전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연 20% 이상의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2011년 이 분야에 진출한 롯데케미칼은 지난해엔 삼성SDI의 수처리 사업을 인수했고, 대구에 조성 중인 '물산업 클러스터'에 500억원을 투자하는 '얇은 막' 생산 공장을 이달 중 착공 예정이다. 효성도 2011년부터 머리카락 굵기의 1200분의 1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는 막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고 있다. 지난해엔 기존 소재보다 오염에 잘 견딜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한 제품을 새로 내놨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02년 산업용 멤브레인인 '클린필-S' 개발에 성공해, 2004년부터 경북 경산공장에서 생산을 하고 있다. 2013년 생산 라인을 증설해 2015년 기준으로 10개국 390개 현장에 멤브레인을 공급했다.

◇세계 물 산업 규모 938조

전 세계 물 산업 규모는 2020년까지 연평균 3%씩 커질 전망이다.'좋은 물'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으로 물 부족이 계속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일본, 독일, 싱가포르 등 주요국들은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물 산업 발전이 지지부진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건설 시공·분야를 제외한 부품·장치 제조 기업은 대부분 영세했고 그나마도 저가 경쟁 위주인 국내 시장에 집중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잇따라 기술 개발과 시장 진출에 나서고 정부도 작년 11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스마트 물 산업 육성 전략'을 마련해 발표했다. 정부의 육성 전략엔 대구에 국비 2335억원과 대구시비 615억원 등을 들여 '물 산업 클러스터'(64만9000㎡·19만6000평)를 조성해 관련 업계를 지원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대구시 관계자는 "현재 롯데케미칼을 포함해 16개 기업의 입주가 확정된 상태로 내년 말 완공 예정"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물 산업 관련 일자리를 2015년 12만4000명에서 2030년 20만명으로 늘리겠다"며 "글로벌 물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육성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구 물산업단지의 경우 롯데케미칼을 제외하곤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인 데다 '물 산업 클러스터 지원법'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국가 신성장 동력이란 차원에서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