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 이젠 국사교과서 편찬 안 한다"

"이제 국사편찬위원회는 더 이상 '국사 편찬'을 맡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바탕이 될 수 있는 사료(史料) 수집과 정리 업무에 중점을 두겠습니다."

12일 취임한 조광(72) 국사편찬위원회(국편) 위원장이 '국사 편찬 종결 선언'을 했다. 지난 정부에서 국편이 해온 역사 교과서 집필 주도나 교과서 집필 기준 제정 같은 '역사 연구 지원과 직접 관련 없는 일'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1일 밤 본지 통화에서 "내가 위원장으로 있는 한 교과서 편찬은 피할 것이며, 앞으로 기관의 개명(改名) 문제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고려대 명예교수로 조선 후기사 전공인 조 위원장은 천주교사와 실학사, 안중근 의사 연구 등에서 업적을 낸 원로 학자다.

―전임 김정배 위원장 때는 국편이 국정교과서 편찬을 주도했는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가가 편찬한다는 것은 현대사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그는 지난 정부의 국정교과서에 대해 '전체주의에 가까운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사료를 발굴하고 정리해서 연구자들이 심도 있고 자유로운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국편에서 '국사편찬위원회'의 명칭을 바꾸겠다는 말이 나왔다.

"사실 그 얘기는 1970년대부터 제기돼 온 것이다. '국사 편찬'이란 용어를 쓰게 되면 전체주의적 느낌이 들고, 특정 사관(史觀)을 강조하려는 것 같은 분위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방 직후부터 줄곧 써온 이름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때문에 그대로 유지됐다고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기관의 개명 문제 역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는 다시 검정 체제로 돌아갔는데, 당초 국정교과서를 만들게 된 동기가 기존 검정교과서의 문제 때문 아닌가?

"검정교과서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국정교과서가 범할 수 있는 오류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그 문제는 어디까지나 학계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며 국편이 개입하면 사상의 자유와 충돌하게 된다."

―최근 대통령이 강조한 가야사 연구를 지원할 것인가?

"가야사를 규명할 필요성에 대해선 이의가 없다. 다른 시대 연구와 마찬가지로 국편이 그 연구 활동에 대해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좀 더 면밀히 살펴보고 논의한 뒤 결정하겠다."

중·고교 역사 교과서는 광복 후 검정으로 발행되다가 1974년 국정으로 전환됐고, 2003년 고교 국사가 근현대사와 분리되면서 국사는 국정교과서, 근현대사는 검정교과서로 이원화됐다.

2011년 국사와 근현대사가 다시 합쳐져 '한국사'가 되면서 검정 체제로 운영돼 오다가 2015년 정부가 다시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뒤 학계와 정치권의 논란을 빚었다. 진통 끝에 지난해 11월 새 국정교과서가 공개됐으나 교육부가 '국·검정 혼용'으로 한발 물러섰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달 12일 '교과서 국정화 폐기'를 지시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국사관'이란 이름으로 설립된 국사편찬위원회는 1949년 문교부 직속 기관이 되면서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현재 교육부 소속 기관으로 '한국사 연구에 필요한 각종 사료의 조사·수집·보존·편찬을 바탕으로 한국사의 연구·편찬·연수·보급을 원활하게 해 한국사 연구의 심화와 발전, 국민의 역사 의식 고양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국사 편찬이라는 이름 때문에 교과서 편찬을 떠맡게 됐다'는 내부 불만이 나오고 있다. 과거 국정교과서는 교육부가 직접 위원회를 구성해 제작했으나 김대중 정부 때 국사교과서 집필을 국사편찬위원회에 위탁했다. 2015년 다시 국정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기로 결정한 뒤에는 또다시 국사편찬위원회가 위탁받아 편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