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작품이 되다

피아니스트 이소연(38)씨는 2008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무대에 '옷 아닌 옷'을 입고 등장했다.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이 '섹시한 쓰레기'라고 평가한 그녀의 '옷'은 버려진 포도 주스 봉지 6000개를 모아 만든 작품이었다. 당시 이씨의 남편이었던 톰 재키(35)는 재활용 전문 기업인 테라사이클의 대표였다. 재키 대표는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1학년이던 2001년 지렁이 똥을 비료로 만드는 아이디어 하나로 회사를 세웠다. 대표적인 글로벌 친환경 기업으로 성장한 테라사이클은 국내 최초 재활용 전문 센터인 '서울새활용플라자'에 입주할 친환경 업체 중 하나다. 새활용은 영어 단어 업사이클(upcycle)의 우리말. 단순한 재사용이 아니라 '원래 없던 가치를 더해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을 담았다.

◇쓰레기를 디자인하는 시대

오는 9월 성동구 용답동에 지하 2층, 지상 5층(연면적 1만6530㎡) 규모로 문을 열 새활용플라자는 '쓰레기의 연금술'을 보여주게 된다. 디자인 공방 30곳과 전문 업체 10곳이 입주할 예정이다. 쓰레기가 디자인을 입고 작품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운영을 서울디자인재단에서 맡았다.

1980년대 청소, 1990년대 분리수거, 2000년대 자원 순환에 이어 2010년 이후엔 모든 쓰레기가 다시 활용되는 '쓰레기 제로'가 소비의 중점이 된다는 철학이 이곳에 담겼다. 지난 3월 완공된 플라자는 국비 100억원, 시비 400억원 등 총 500억원이 들어갔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플라자를 중심으로 장안평 중고차매매시장, 중랑물재생센터, 하수도과학관 등이 어우러진 50만㎡ 규모의 '새활용 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

섬유·가죽·금속·배터리·자전거·나무·돌·도자기·유리병 등 활용 가능한 쓰레기는 건물 지하 2층에 도착한다. 지하 1층에서 소재별로 분류된다. 지하 1층에는 소재를 모아두는 소재은행이 있다. 지상 1층으로 올라오면 용도에 맞게 재단된다. 2~5층은 적당히 재단된 소재를 환골탈태시키는 공방이다. 자전거 부품으로 화분·조명기 등을 만드는 업체 세컨드비의 정지은(29) 대표는 12일 "누구에게나 실용적인 예술 작품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재활용 부품을 이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플라자에는 공방 외에도 작품 전시실, 작업장, 재활용 장터, 카페, 레스토랑이 들어선다. 시민들이 새활용 작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 공간도 있다. 레스토랑에선 낙과(落果)를 맛있는 잼으로 만드는 법 등 쓰레기 제로 시대에 걸맞은 요리 강좌도 열 예정이다.

◇오래된 흠집이 사연으로 살아나

새활용플라자 입주 업체는 제품에 사연을 담아 판다. '흠집도 스토리로 살린다'는 스위스 재활용 기업 프라이탁의 정신을 살린 것이다. 독일계인 다니엘과 마커스 프라이탁 형제는 1990년대 초반부터 5년 이상 쓰다 버린 트럭 방수포를 기증받아 가방으로 만들고 있다. 일부러 흠집을 놔두는 프라이탁의 가방은 개당 3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물건을 사는 이들은 사회적 기여를 한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국내 기업 파이어마커스는 한 소방관의 아들이 '한국의 프라이탁'을 꿈꾸며 설립한 회사다. 아버지를 따라간 소방서에 오물이 묻어 폐기 처분된 호스가 산처럼 쌓인 것을 보고 '저걸로 튼튼한 가방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입주가 확정된 공방 중에는 버려진 우산 천만 다루는 곳도 있다. 이곳에선 구멍 난 양말을 기워 붙인 양말 인형, 못 입는 청바지로 만든 모자, 강원도 광산의 광물 찌꺼기를 활용한 테이블, 우유팩으로 만든 필통 등 한때 쓰레기였음을 짐작하기 어려운 소재들이 새로운 상품으로 변신한다. 윤대영 서울디자인재단 본부장은 "새활용플라자의 목표는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라며 "이 세상에 다시 못 쓸 것은 없다는 환경 보전의 정신을 시민이 공유하는 공간으로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