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의 반란 "당신들과 우리가 뭐가 달라?"

"먹고 싸고. 내가 당신과 뭐가 달라?"

젖소는 지금 '시위' 중이다. 입과 항문에 보란 듯 빨간 나팔을 꽂았다. 머리가 박제된 숫양도 할 말이 많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죽이는 족속!" 관객을 정면으로 쏘아보는 견공(犬公)들 눈빛도 심상찮다. "내 벌거벗은 몸 바라보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심정이 이랬을까.

동물들의 반란. '미술관 동물원'이란 간판이 붙은 서울대 미술관은 입구부터 불온하다. 백색 거대 도롱뇽이 관람객 발목을 물어뜯을 기세로 엎드려 있다. 회화, 조각, 영상 작업을 하는 작가 17명이 의기투합했다. 이들의 동물원은 아이들 웃음이 넘치는 꿈동산이 아니다. 인간의 이기와 폭력으로 물든 공간. 서구 제국주의 약탈의 산물로 시작된 '동물원'의 운명이다.

노충현(47)이 그린 텅 빈 우리는 음산하다. 황량한 벽과 녹슨 철창, 타이어와 그네만 남았다. 동물을 '위해' 만든 공간이 실은 감옥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빈 우리가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불안감 가득한 무대처럼 보였다"는 작가는 제목을 '연극이 끝난 뒤'라고 붙였다. 박찬용(53)의 '가까운 것들의 관계―마주보는 개'는 개량 투견종인 핏불(pit bull) 7마리를 형상화했다. 기세는 맹렬하나 한쪽 다리엔 쇠사슬이 매여 있다. 패배는 곧 죽음. 살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투견들이 구경꾼에게 묻는다. "당신이나 나나 똑같은 운명이지?"

변종 동물도 출현했다. 산업폐기물을 상징하는 검정 비닐봉지, 이를 몸통 삼아 자라난 거북·불도그·오랑우탄 변종이다. 인간의 탐욕과 소비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결과물.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린 동물들은 급기야 '쓰레기 괴물'로 변신해 인간 세상을 역공할 태세다. 이동헌(35) 작품.

반려동물 인구 1000만 시대답게 동물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다. 문제는 동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 박승원(37)이 만든 두 편의 영상은 우습고도 슬프다. '시아람 1장'은 릴리라는 이름의 동물원 침팬지와 소통하려는 작가의 눈물겨운 노력이다. 엉거주춤 자세로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좌우로 흔들거나 가슴을 두드리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멋지게 울부짖는 사자여!'에선 사자 울음소리를 흉내 내 말걸기를 시도한다. 사자는 묵묵부답. 작가는 평론가 존 버거의 말을 인용한다. "사람들이 동물을 만나러 가는 동물원은, 그런 만남이 애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곳이다."

'별미'는 김상진(38)의 '개소리'다. 낡은 드럼통에 스피커가 여럿 달렸다. 녹색 버튼을 누르면, '멍멍' '왈왈' '바우와우' '블라프블라프' 등으로 표기되는 개 짖는 소리가 처음엔 독창으로, 나중엔 떼창으로 쏟아진다. 똑같은 개소리를 서로 다르게 인지하는 언어와 사운드의 실험. 수천마리의 산 나비를 죽여 수십억대 작품을 만드는 데이미언 허스트에 대한 조롱으로도 읽히는 전시다. 8월 13일까지. (02)880-9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