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러우면 어때요? 스타일은 다 옳아요"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지춘희(63)는 요즘 새로운 일을 준비 중이다. 12일 서울 청담동 미스지콜렉션 1층 '갤러리 지'에 가보니 그는 선이 잘 살아 있는 흰색 셔츠에 푸른 스커트, 하얀 스니커즈 차림으로 직접 의자를 옮기고 가벽을 밀었다. 패션과 미술, 가구를 접목한 전시 '미스지콜렉션 아트 앤드 라이프 프로젝트'가 그곳에서 15일부터 한 달간 열린다. 그는 "화려해 보이는 일도 결국 다 노동이죠"라며 웃었다.

벽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박승순(63) 작가의 추상 작품들이 걸려 있다. 덴마크의 전설적 디자이너 핀 율(1912 ~1989)이 만든 의자와 테이블, 서랍장이 곳곳에 놓였다. 미술 작품을 옷감에 프린트하고 가구의 색과 선을 적용해 만든 지춘희의 옷들이 한쪽에 가지런히 걸려 있다. 패션과 미술, 가구를 강렬한 컬러와 경쾌한 분위기가 관통한다. 자신의 취향과 안목으로 셋을 묶어낸 지춘희는 "사회 분위기가 너무 오랫동안 무겁고 우울했잖아요. 가볍고 재미있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어요"라고 했다.

지춘희가 "작가 수십 명을 검토한 끝에 찾아낸 숨은 보석"이라고 소개한 박승순 작품은 대담한 컬러와 붓 터치로 역동하는 에너지를 드러낸다. 독창적이고 귀족적인 가구의 대명사로 통하는 핀 율의 의자는 마치 조각 작품 같다. 그의 대표작인 귀여운 곡선의 '펠리컨 의자'는 흰 양털과 화사한 파란색 천을 씌운 두 종류를 들여놨다. 옷은 여행지에 딱 어울릴 듯한 하늘하늘한 소재. 간결한 선과 시원한 색을 살렸다.

브랜드 창립 40주년을 앞둔 지춘희는 스타가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패션계를 오랫동안 성실하게 지켜왔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을 고수해 여전히 서울패션위크에서 가장 많은 손님을 불러모은다. 심은하부터 이영애, 이나영, 이보영까지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입히고 스타일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지춘희는 늘 화려함보다 자연스러움을 내세운다. 좋은 소재를 써서 그 특성을 잘 살린 옷, 자신만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찾는 노력을 강조해왔다. 예술도, 라이프스타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림을 참 좋아하지만 집에는 잘 걸어 놓지 않아요. 나 자신이 내 공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응접실 사방이 장식 없는 새하얀 벽이에요. 가구도 이것저것 써봤지만 결국 내가 직접 공장에 의뢰해 만든 것을 사용해요. 요즘 사람들은 정보가 너무 많고 공부를 너무 많이 하죠. 난 자연스럽게 살고 느끼는 게 좋아요."

그는 "각자의 생각, 취향, 추구하는 가치관이 곧 스타일"이라며 "모든 스타일이 다 옳다"고 했다. "촌스러우면 어때요? 그것도 자기 스타일인걸. 남이 인정해주면 세련된 스타일이 되는 거지만, 인정받지 못하면 또 어때요." 수십 년간 셀 수 없이 많은 여배우를 겪어온 그가 요즘 여배우들에게 아쉬운 점도 그것이다. "예전 스타들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고 서로를 깊이 이해하면서 옷과 스타일,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했죠. 요즘 스타들은 평준화된 기획 상품 같아요."

이번 전시 제목 끝에는 '1부'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계속 이어가려고요. 다음 전시는 패션과 그릇의 만남을 구상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