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아내 미수 씨와 독일인 남편 다니엘 이야기

2005년, 독일로 건너가 결혼할 때만 해도 십여 년 동안이나 독일 전역을 떠돌며 살게 될 줄 몰랐다. 남편 다니엘이 대학을 졸업하면 제3세계 어딘가로 생태 프로젝트를 하러 떠날 생각이었다. 아니면 독일 어딘가에 땅을 구해 대안 생태 농경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그곳에 뿌리를 내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난 시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 덕에 독일 전역에 점을 찍어 가며 이사를 참 많이도 다녔다. 그래서 지금은 할레(Halle)에서 텃밭을 일구며 잠시나마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에 감사한다. 사는 곳이 어디였든, 그 순간순간을 지나오며 우리 부부의 중심에는 늘 ‘생태 부엌’이 함께했다.

나는 2001년 어느 여름, 독일에서 열린 국제 워크 캠프에서 다니엘을 만났다. 햇살이 좋던 어느 날, 숙소 건물 앞 나무벤치에 앉아 캠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을 때였다. 햇빛이었는지, 금빛 머리칼에 비친 반사광이었는지, 환한 후광을 내뿜으며 키가 훌쩍 큰 남자가 등 뒤에 커다란 가방을 메고 걸어 들어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반짝거려 눈을 떼지 못했고, 그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던 그 사람이 바로 지금 곁에서 인생을 함께 나누는 남편 다니엘이다.

다니엘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우리 숙소 바로 위층에 사무실을 둔 ‘퍼머컬처 숲 텃밭 프로젝트’에 인턴십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우리는 나중에 다니엘이 워크 캠프 스터디의 ‘지속 가능한 농경 프로젝트’ 투어 가이드를 맡게 되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운명이었을까. 나는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마주칠 때마다 그에게 말을 걸었고,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 내면의 깊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그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그가 생태적, 윤리적인 이유로 몇 년째 채식을 하고 있다는 얘기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내가 꿈꾸는 삶이 현실로 구현되지 않을까? 다니엘을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며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게 아니라 소박하지만 생태적인 삶,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삶, 헨렌 니어링 부부처럼 ‘땅에 뿌리를 내린 삶’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거란 기대로 들떴다. 그리고 2005년, 우리는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는 해를 더해 갈수록 지속 가능한 생태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하고 있다. 특히 기후 변화에 따른 이상 기온 현상이 두드러졌을 때 더 그랬다. 2015년은 변덕스럽고 이상한 기후 탓에 텃밭 작물들이 몸살을 앓았다. 7월 초에는 할레 하이데 노드 지역에 토네이도가 불어닥치고 폭풍우가 휘몰아쳐 십여 미터가 넘는 고목들이 폭삭 쓰러졌다. 일대 교통은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이로 인해 재산 피해를 입은 집들이 속출했다. 그런가 하면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스위트체리만 한 우박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쏟아지기도 했다. 그 모습은 성경에 나오는 종말이 떠오를 만큼 기묘하고도 섬뜩했다. 그리고 2016년 8월에는 사막을 방불케 하는 고온과 가뭄으로 가을이 오기도 전에 들풀은 물론이고 나뭇잎이 바싹 메말라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이런 이상 현상들이 오롯이 인간 탐욕의 결과인가를 두고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임 소재나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보다 개선을 위한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도, 우리 가족도, 이웃도, 지구도, 모두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식생활을 채식(비건)으로 바꿈으로써 생태적인 세상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채식은 일상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도 눈에 띄는 결과를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면서도 꾸준히 실천하기에 무리가 없다. 물론 나에게도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누구나 나처럼 지속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차근차근 실천해 갈 수 있다. 매번 작심삼일로 끝나고 만다고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그 짧은 시도도 소중한 것이고, 작심삼일이 평생 반복된다면 그것 또한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간혹 혼자서 세상을 위해 무엇을 바꿀 수 있겠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지구 환경이라는 큰 틀에서 봤을 때, 전기를 적게 쓰고,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고, 텃밭을 가꿔 자급자족을 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아주 미미한 변화이고 실천일 수 있다. 아니, 변화나 실천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미세한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 존 로빈스(John Robbins)는 이렇게 말했다. ‘새벽을 일깨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서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완벽하지 않은 그 어떤 시도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하는 우리 삶의 방식과 우리 집 부엌의 레시피가 ‘생태 부엌’의 완성판은 아니다. 단지 우리 부부가 다양하게 시도하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다듬은 우리 집 밥상과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삶의 한 모습일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타산지석 삼아 자신만의 생태 부엌을 찾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생태 부엌

지속 가능한 생태적 삶을 위해 완전 채식을 하고, 부엌에서 냉장고를 없애고,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다. 더불어 ‘에너지 제로’를 지향하는 부엌에서 만드는 스무 가지 요리와 열여섯 가지의 곁들임 음식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