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6.16 16:39

모로코에서 페리를 타고 스페인 타리파로 들어가는 길이다. 배가 출발하자마자 선상 제일 높은 4층으로 올라갔다. 멀리 모로코의 탕헤르가 한눈에 들어온다. 눈부시고 아름답다. 한편에서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시끌벅적거리지만 시끄럽다기보다는 그 모습조차 눈부시다. 마음의 여유 탓일 게다. 문득,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사는 게 일장춘몽이라더니 내 인생도 그렇다.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돌려 도시의 아름다움을 눈에 담는다.


이상한 영토 스페인 속 지브롤터

다시 버스를 타고 스페인 속 영국 지브롤터를 향해 질주한다. 지브롤터는 스페인에 속해있는 영국의 해외영토다. 스페인이 돌려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주민이 거부해서 투표한 결과 그대로 영국령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아마도 주민은 실리를 택한 모양이다. 스페인보다야 영국이 더 잘 사니까.

이곳은 길이 5㎞, 너비 1.3㎞, 면적 5.8㎢의 반도로 현재 약 3만 명이 살고 있으며 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입구에 있으므로 당연히 전략 요충지다. 영화 ‘특전 유보트’에도 생생히 묘사되어있지만 요새 중의 요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아도 바다 쪽으로 난 절벽에 수많은 구멍을 파고 그 속에 숨어 공격을 해대니 아무리 특전사가 투입되어도 함락이 쉽지 않은 요충지다.

지브롤터 성벽을 올라가자면 여권 검사와 출국심사는 필수란다. 쉽게 말하면 스페인 땅 안에 있는 영국령으로 들어가니 필수인 셈이다. 좀 웃긴 현상이지만 어쩌겠는가. 하라니 할 수밖에. 무뚝뚝하고 심드렁한 표정의 심사 요원 앞에 여권을 내미니 귀찮다는 듯 도장을 꽝하고 찍는다.

밖으로 나오니 정말로 영국 국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미니버스를 타고 지브롤터 꼭대기에 오른다. 유로파 포인트에 올라서니 대서양과 지중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여기가 지중해와 대서양으로 나가는 입구라고 한다. 당연히 등대도 있고 이슬람 사원인 하얀 더 락이 있다. 아무래도 바위를 따라 형성된 곳이니만큼 오르막이 아주 가팔랐다. 산비탈에 서서 대서양과 지중해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다니 사람이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이곳 까지 와서 서 있다니 하는 생각이 미치자 나도 복 받고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한다. 늘 부족하다 생각하고 살았는데 말이다.


투우의 발상지 론다와 누에보 다리

지브롤터를 떠나 투우 발상지라는 론다로 향했다. 영화에서 투우 장면을 보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투우가 금지되어 실제로는 볼 수 없어 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투우 경기를 하려면 소를 이틀 동안 캄캄한 곳에 가두었다가 투우장으로 내 보낸다고 한다. 그래야 소가 흥분을 하며 날뛰어 재미있는 투우 경기가 되기 때문이란다. 사람으로 치면 그 방법이 너무 비인간적이라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들어보니 투우 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곧 도살할 소 중에서 골라 투우 경기에 내보낸다고 한다. 참 잔인하다. 처음 든 생각과는 다르게 경기가 중단되길 참 잘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차에서 내리니 기분 좋은 바람이 온 몸을 싸고돈다. 천천히 걸어 누에보 다리 위에 섰다. 오른쪽은 구시가지고 외쪽은 신시가지다. 대협곡 위에 걸쳐진 누에보 다리 아래 띠호강 강물이 유유히 흘러간다.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구시가지로 가 본다. 내가 걸어왔던 신시가지는 한톤 가라앉은 주황색이 섞인 갈색 지붕 위에 하얀 벽들의 집이다.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구시가지는 역시 허름하다. 세월의 힘으로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벽이 허물어진 집도 보인다.

문득 예전에 들렀던 옛집 골목이 생각났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갔던 옛집 골목길에는 더는 푸른 하늘이나 나비가 날던 곳이 아니었다. 초여름이면 코를 찌르던 인동초 꽃향기도 없었고 흐드러지게 피던 아카시아 꽃도 없었다. 그때의 그 허무함이 왜 이곳에서 느껴지는 건지. 아마도 세월 따라 변해가는 나를 바라보는 마음속 허무함 때문이라 생각했다.

조선일보 조선닷컴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