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응원한다" 실버 치어리더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한 지하 연습실. 30여명 할머니들이 뿜어내는 열기(熱氣)로 실내가 후끈 달아올랐다. 무릎 위로 떨어지는 짧은 녹색 복장을 한 이들은 음악에 맞춰 30분 동안 휴식 없이 율동을 선보였다. 동요부터 팝송, 최신 아이돌 노래까지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했다. 몇몇이 녹초가 돼 바닥에 드러누웠다. '군기 반장' 김정이(72)씨가 외쳤다. "당장 대회가 코앞인데 이러기야? 일어나 언니들! 다시 한 번 갈게. 원,투…"

2013년 출범한 국내 최초의 실버치어리더단 '낭랑스쿨'이 전국 대회를 앞두고 막바지 연습이 한창이었다. 18일 경기도 부천에서 열린 '전국 치어리딩 페스티벌' 시니어 부문(65세 이상)에 출전했다. 출전팀은 유일했다. 1위는 당연한 일. 차안자(74)씨는 "다음엔 일반부에 출전해 당당하게 실력을 겨루겠다"고 말했다.

50명 정도 되는 단원들의 평균 연령은 75세. 60대뿐 아니라 80대 단원도 있다. 간사 김도경(44)씨는 "일부 회원들은 신체 나이가 30대일 정도로 젊고 건강하다"고 말했다.

낭랑스쿨은 조혜란(46) 세계전통문화놀이협회장이 산파 역할을 했다. 조 회장은 노인들을 상대로 치매 예방체조 등을 가르쳐왔다. 대한치어리딩협회 활동도 했던 조씨는 "할머니들에게 치어리딩을 가르치면 어떨까" 생각했다.

'치매 예방체조'보다 동작이 크고 빠른 치어리딩 안무를 통해 할머니들의 체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몸이 약한 헐머니들에게 처음부터 과격한 운동을 시킬 수는 없었다. 필드하키 선수 출신인 조씨는 체지방 성분 검사와 기초 체력 운동을 병행하는 등 정성 들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조씨는 "많은 할머니들이 처음엔 아프다며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며 "하지만 조금씩 자신감이 붙자 나중에는 오히려 무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가면 재미있게 운동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전직 시장(市長)의 아내에서부터 교사, 약사, 식당일이나 청소일을 하던 사람들까지 다양한 배경의 회원들이 몰려들었다. 혼자 살거나, 남편과 사별 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왕언니' 김순덕(81)씨도 7년 전 남편과 사별한 후 딸을 따라 전주에서 상경했다.

서울에 아무 연고가 없어 외로움을 느끼던 와중에 낭랑스쿨을 알게 됐다. 지금은 "연습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매주 세 번 두 시간씩 진행되는 연습 시간에는 모두 "언니, 동생"이라고 부르며 가족처럼 지냈다. 연습 후에는 서로 싸온 고구마나 과일을 나눠 먹는데, 여고생들처럼 이어지는 수다에 연습실 내부가 시끌벅적해지기 일쑤다. 허리 수술 후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던 최순실(73)씨는 입단 2년 만에 '노인 치어리더 지도자'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낭랑스쿨은 현재 자체 교육과정을 통해 회원 10여명을 '노인 생활체육 지도자'로 양성 중이다. 약 6개월 동안 이론과 실기를 접목한 교육과정을 수료시켜 정부 공인 '실버체조강사'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조씨는 "매번 형식적이고 일회성에 그치는 노인 체육이 아쉬웠다"며 "치어리딩을 통해 노인들의 건강도, 웃음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 문제의 해결책? 멀리 가지 마세요.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