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15분.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붉은 해가 떠오른다. 해가 우주를 깨운다.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잠시 후 푸른 하늘이 열렸다.
이른 아침 출발이다. 성판악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인증 샷을 찍는다. 성판악휴게소 - 속밭대피소 - 사라오름입구 - 진달래밭대피소 - 백록담이 오늘 코스다. 정상까지 9.6km 왕복 19.2km 를 걷는 험난한 코스이다. 살짝 겁이 난다.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 한라산이 아니던가.
마음속으로 진달래대피소까지만 가리라 다짐을 하고 길을 떠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데코가 갈린 계단이다. 스틱을 꺼내 든다. 신발과 스틱을 믿는다. 스틱을 사용하면 체중의 30% 하중을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정상까지 오르는데 4시간을 잡았다. 무리하지 않고 쉬엄쉬엄 다니기로 했다. 중간마다 사진도 찍고 1시간마다 10분 휴식을 취한다. 속밭대피소까지 힘들이지 않고 도착했다. 늦게 도착하면 휴식시간도 짧아진다.
표지판이 나올 때마다 함께한 길벗이 “언니 대단해요. 인증샷 찍자” 한다. 드디어 진달래밭 대피소다. 양말을 벗고 주저앉아 10분간 휴식을 취하니 더 오를 수 있을 거 같다. 배낭을 다시 메고 출발이다.
해발 1,600m. 왜 이리 100m가 길게 느껴지는지 오직 팻말이 나오기만을 바라면서 걷는다. 멀리 한라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의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 이야기 속 전설처럼 느껴진다. 도저히 못 가겠다. 포기할까 생각하는데 “언니 대단해요. 거기 좀 서 봐요. 와 멋있다.”하고 사진을 찍어준다. 힘이 된다. 다시 도전. 더는 못 올라가 포기를 하고 싶다. 그런데 발이 저절로 계단을 오른다.
힘들면서도 뒤를 돌아보니 산의 모습이 장관이다. 탁 트인 산등성이와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도시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바람이 높은 곳까지 올라온 사람들의 땀을 어루만져 준다. 한 폭의 그림이다. 정상에 오르니 꽃보다 아름다운 색채를 내는 등산객들이 넓게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데코 위에 피어 있는 꽃 같다. 먼저 도착한 회원들이 박수로 맞이해준다. 꿀맛 같은 점심. 호텔에서 싸준 도시락과 간식이다. 똑같으니 나눠 먹을 필요도 없다.
해발 1,950m 백록담이 궁금했다. 가뭄에 물이 없겠지. 예상대로 백록담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한라산 정상에 내리쬐는 햇볕은 따갑다.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준다. 양말을 벗고 맨발로 서보았다. 뜨거워서 몇 분 못 견뎠다. 햇빛이 뜨거운 게 아니라 하늘이 가까워 뜨거운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날씨가 안 좋으면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한라산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행운을 안게 된 것이다. 감사했다. 자신에게 뿌듯했다. 기념사진을 찍다가 내려오는 길에 후미가 되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열심히 걷는 수 밖엔.
오르는 길은 힘들지만, 하산 길은 다칠까 무섭다. 내 뒤에 3명. 그래도 안심이다. 내가 마지막 후미라면 더 불안하다. 진달래 대피소에서는 안전을 위해 모두 하산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하산 시간이 오래 걸려 위험하기 때문이다.
성판악까지 내려오는 너덜길을 정신없이 걸었다. 너덜길을 내려오는 길엔 초 집중한다. 돌의 굵기를 보며 짐작을 한다. 아직 갈 길이 멀었어.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 숲 속 날이 어두워진 것 같다. 벗는다. 다시 힘을 내서 걷다 보니 돌의 크기가 자갈돌만 하다. 거의 다 왔구나.
박수를 받으며 성판악 휴게소에 도착했다. 한라산 등반 기념증서를 받았다. 함께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기념증서를 꺼내 보니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