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계란 수입 펑크… 업체만 믿은 농식품부

지난 19일 정부는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태국에 대한 수입 위생 절차가 9일 완료됐고 수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20~21일 사이 태국산 계란 약 200만개가 들어오고 매주 200만~230만개가 수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21일 태국산 계란은 검역용 샘플 약 1만여 개만 들어오고 200만개는 감감무소식이다. 그 사이 계란 값은 천정부지로 솟고 있다. 계란 한 판(특란·30개 기준) 가격은 7991원(23일 기준)에 이른다. 1년 전(5349원)보다 2600원 이상 비싸다.

계란 값이 폭등한 이유는 AI(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사태로 계란 수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엔 계란을 낳을 수 있는 닭(산란계)이 4200만마리(3월 기준) 있다. 작년 12월에는 7104만마리가 있었는데 2402만마리를 살처분하면서 확 줄었다. 산란계는 하루에 약 3300만개의 계란을 생산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AI 발생 전 생산량(4200만개)보다 대폭 줄어든 것이다.

계란 공급이 줄어 계란 값이 치솟자 정부는 6월 중 태국산 계란을 수입해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했다. 지난 3월 전체 계란 수입량의 98.5%를 차지하던 미국에서 AI가 발생하면서 수입이 가능한 국가가 줄어든 상태였고, 태국 등을 추가해 다변화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정부는 스페인(23만개·올해 1~2월 기준), 호주(4만개), 뉴질랜드(5만개) 등에서 이미 계란을 수입하고 있었지만 가격이 높아 수입 업체들이 수입 물량을 늘리기를 꺼리는 상황이었다. 해당 국가에서도 언제 수입을 줄일지 모르는 우리나라를 위해 계란 생산량을 늘리기도 어려웠다. 그에 반해 태국은 AI 청정국이고 가격도 한 개에 100원(관세 포함) 정도로 저렴해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그런데 매주 200만개씩 들어온다던 태국산 계란은 21일 검역용 샘플만 들어오고 소식이 끊겼다. 농식품부는 22~23일 사이 태국산 계란을 수입하는 업체와 간신히 연락이 닿았지만 "곧 계란을 수입한다"는 답변만 들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해당 수입 업체가 회사를 이전하고 사장이 병원에 입원하는 등 일이 겹치면서 원활하게 일이 진행되지 않았을 뿐"이라면서 "곧 수입이 될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정부의 역할은 태국과 '수입 위생 조건'을 마련해 태국산 계란이 수입되게 길을 터주는 것에 한정된다고 설명한다. 수입을 언제, 얼마나 할지 등은 각 업체가 알아서 할 몫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농식품부가 태국산 계란 수입을 계란 값 폭등을 잡을 '묘수'처럼 대대적으로 알린 것에 비하면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농식품부 관계자들이 현장 확인을 위해 수입 업체를 직접 찾아나선 것은 지난 23일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해당 주소지는 텅 빈 상태였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계란 유통업체 관계자는 "첫 수입이니만큼 꼼꼼히 챙겨도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는데 (정부가) 너무 허술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